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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08   산삼이란 무엇인가 
2010.05.08   심마니 
2010.05.08   산삼과 재배삼 
2010.05.08   산삼의 생육 
  산삼이란 무엇인가  +   [산 삼 자 료]   |  2010. 5. 8. 08:35

산삼이란 무엇인가



산삼이란 산에서 천연적으로 자생하는 인삼을 말한다.

산삼은 논밭에서 재배하는 인삼보다 먼저 존재하여 왔고 인삼이란 이름도 옛날에는 산삼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인간이 재배하는 인삼은 5·6년생이 되면 채취하지만 산삼은 사람의 눈에 띄지 않으면 오랜 세월을 산속에서 자생하기 때문에

약효도 재배삼보다 뛰어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산삼은 드릅나무(五加)과에 속하는 다년생 초본식물로써 학명은 Panax Ginseng이다.

산삼은 산악지대에 자생하는 식물로 환경과 생년에 따라 다르지만 줄기가 큰 것은 높이가 50㎝ 되는 것도 있으며 뿌리는 대체로 도라지와 비슷하다.

뿌리의 윗부분에서 1개의 원줄기가 나오고 3∼4개의 잎이 윤생하며 연륜을 더할 때 가지가 많아지고 잎도 늘어난다.

잎은 줄기 끝에 손바닥처럼 생긴 잎이 대개 다섯 개이고 끝이 뾰족하고 밑부분이 좁고 잎 표면에 잔털이 있으며 잎사귀 가장자리는 톱니와 같다.

꽃은 연한 녹색으로 4월에 피고 열매는 6월말경에 맺히는데 8월에는 둥글고 빨갛다.

뿌리는 보혈강장 또는 만병통치약으로 옛부터 전하여 오고 있으며 의학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성장속도가 느려서 40∼50년 지난 것도 몸체가 작은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몸체에는 뇌두, 몸통, 방울, 가락지, 잔뿌리 등으로 재배삼과 구별되고 있다.

그러나 삼국사기를 보면 신라 소성왕(昭聖王) 원년(서기 799) 7월에 9척(2.7m)이나 되는 산삼을 얻자 매우 기이히 여겨 당나라에 진상한 일이 있다.

조선시대 이수광이 지은 지봉유설(芝峰類說)에 보면 산삼 가운데 큰 것은 너댓살 먹은 어린애만한 것도 있다고 한다.

이런 것을 캐면 산삼을 캔 사람이 이내 죽기 때문에 두려워서 산삼을 감히 캐지 못한다는 기록이 있다.

한국의 산삼은 약효과 탁월한데다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어서 인삼(人蔘)이라 불리웠고

일본이나 중국인삼은 ''삼''자를 모두 參으로 쓰고 있지만 고려인삼은 ''삼''자를 蔘으로 써서 다른 인삼과 차별화하고 있다.
산삼은 한반도 일대와 중국 동북삼성과 하북성 북부와 러시아 연해주에서 발견된다.

이는 모두 옛날 고구려의 영토에 포함된다. 위도상으로 볼 때 산삼은 북위 30°∼48°에 이르는 지역에서 자생한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한국은 33.7°∼43.21°에서 산삼이 자라고 중국 만주지역은 40°∼47°에서 산삼이 자생하고

러시아 연해주는 40°∼48°에서 산삼이 발견된다.

그중 한반도에서 생산되는 산삼이 가장 약효가 뛰어나기 때문에 중국인들은 고려인삼이라 부르고 일본인들은 조선인삼이라 한다.

독일학자 Nees도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모든 삼을 Panax Schinseng Var, Coraiensis Nees라 명명하고 있다.

모두 Korea로 표기한다. 산삼, 즉 인삼은 옛날부터 仁蔘, 三 , 地精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 산삼은 산삼이 자생하기 좋은 기후와 토지등 천연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어느 나라보다도 질적으로 뛰어난 산삼의 생산지가 되고 있다.

(「''신비로운 산삼'' 나도 산삼을 캘 수 있다」 중에서, 김창식 저, 도서출판 서신,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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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마니  +   [산 삼 자 료]   |  2010. 5. 8. 08:26

심마니


심마니는 산삼을 캐는 사람을 일컫는 말인데, 심메마니 라고도 한다.

심메마니란 ''심''은 삼을 ''메''는 산을, 그리고 ''마니''는 사람을 의미하는데

심메마니란 말은 산삼을 캐는 심마니들끼리 사용하는 은어다.
우리나라에서 산삼을 캘 수 있는 지역은 제주도 전라남도 경상남도를 제외한 전역이라고 하겠다.

옛사람들은 산삼을 캘 수 있는 지역으로 함경북도 개마고원일대, 평안북도 강계지방,

강원도 오대산 설악산 금강산, 전라북도 덕유산 지리산 일대라고 하였다.

그러나 오늘날은 심산유곡에서 산삼을 캐기보다는 야산에서 더 많이 캐고 있다는 것은

심마니들끼리 공공연한 비밀로 되어 있다.

심마니들이 산삼을 캐기 위하여 활동하는 시기는 4월부터 11월초까지 약 7개월간이라고 하겠다.

약효가 가장 좋은 시기는 처서에서부터 입동까지라고 흔히 말하고 있지만 필자의 견해로는

일년 중 어느때 채취하거나 약효는 마찬가지라고 하겠다.

심마니들이 입산하는 날을 미리 정하여 놓는데 1,3,5,7,9등 양수(陽數)를 택한다.

양수는 액운이 끼지 않고 길한 날이라고 생각한다.

호랑이는 산신(山神)의 화신이라고 해서 산신을 노엽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심마니들은 이런 것을 따지지 않고 기분이 좋은 날은 입산을 단행한다.

심마니들은 산속에서 부딪히는 위험이나 외로움을 덜기 위하여 떼를 지어 다닌다.

이때 사람 수도 홀수인 양수를 택하여 무리를 진다. 심마니들이 입산 날짜가 결정되면 그 날부터 근신생활로 들어간다.

첫째로 살생을 하지 않으며 사람이나 짐승의 시체도 보아서는 안된다.

둘째로 고기나 생선같이 비린내 나는 음식을 먹지 않는다.

셋째로 잔치집이나 초상집에 가지 않으며 상주를 만나는 것도 피한다. 넷째 여자와 관계를 갖지 않는다.

이러한 금기사항은 입산 후에도 지켜진다. 그러나 오늘날 채삼꾼들은 이런 금기사항에 개의치 않는다.

심마니들이 입산하여 채취활동이 시작되면 가급적 말을 하지 않는다.

꼭 할말이 있으면 은어로 한다. 산신이 살고 있는 곳에서 속된 세상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신성한 산신에게 불경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마니들이 은어로 말하는 것은 조선시대 채삼활동을 금지하고

당국에서 심마니들을 계속 감시하기 때문에 은어를 사용했다는 설도 있다.

당국에서 심마니들을 계속 감시하기 때문에 은어를 사용했다는 설도 있다.
심마니들이 입산한 뒤에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그들이 머무를 모둠이라 하는 움막집을 짓는 일이다.

모둠은 나뭇가지로 얽어서 짓는데 비바람을 막아주고 동물의 습격을 피하기 위하여 짓는다.

밤에 잘때는 모닥불을 피워놓고 잠을 잔다.

오늘날은 교통수단의 발달로 당일치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잠을 잔다해도 천막을 치고 야영을 한다.

심마니들은 산신령의 도움이 없이는 산삼을 캘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심마니들은 입산하자마자 돌로 단을 쌓고 산신령에게 입산제를 지내고 조석으로 산신제를 올린다.

산신제는 샘이나 물가, 또는 고목나무 아래나 바위 아래에서 지낸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보면 부정탄다고 해서 은밀히 지낸다.
심마니들은 산신령으로부터 좋은 꿈을 점지받기 위하여 잠을 청한다.

이때 머리는 전에 산삼을 캔 일이 있는 구광쪽으로 하는 것이 상례다.

렇지 못한 곳이면 어인마니(심마니중 우두머리)가 지정해 주는 쪽으로 누워서 잔다.


산삼을 캘 수 있는 길몽과 흉몽은 다음과 같다.

<길몽>
송장을 짊어지고 산에서 내려가는 꿈
어린이를 업고 산에서 내려가는 꿈
어린이를 끌어안는 꿈
산삼이 사람으로 변하는 꿈
호랑이가 사람을 물어가는 꿈
사람이나 짐승을 살해하는 꿈
하늘에서 내려오는 선녀를 안는 꿈
돼지를 잡는 꿈
백발노인이 무를 주어 받는 꿈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시체를 업는 꿈

<흉몽>
어린이를 보고도 업지 못하는 꿈
눈 덮인 산을 보는 꿈
얼음에 쌓인 산과 들을 보는 꿈
얻은 무를 남에게 주는 꿈
잡고 가던 지팡이가 부러지는 꿈
여자가 나타나서 즐거워하는 꿈
개가 나타나서 짖어대는 꿈
여자와 함께 놀아나는 꿈
타고 있던 호랑이가 빠져 나가는 꿈

심마니들이 길몽을 꾸면 즉시 작전(채취활동)에 들어가지만 흉몽을 꾸고나면 즉시 하산하고 만다.

심마니들은 산삼을 캐기전에, 산삼을 캐었을 때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미리 정한다.

입산하여 캔 산삼을 골고루 나누어 갖는 것을 원앙메라 하고,

산삼을 제일 먼저 발견한 사람이 독차지하는 방법을 독메라고 하는데

이것은 일행이 서로 상의하여 결정한다.

심마니들이 산에 들어가서 산삼을 발견하면 큰 소리로 세 번 ''심봤다'' 하고 외친다.

독메로 정했을 경우 삼을 발견한 심마니가 ''심봤다''를 세 번 외치면 다른 심마니들은 행동을 멈추고 그 자리에 앉는다.

산삼을 발견한 심마니는 자기 시야에 들어오는 산삼을 실로 묶어 표하거나 나무가지를 꺾어서

산삼앞에 표한 뒤에 ''심메보시오(산삼캐시오)'' 하고 알려준다.

그러면 기다리던 심마니들은 표시가 되지 않은 산삼이 있는가 살펴보고

자기가 발견한 산삼이 있으면 그것을 캐서 자기 것으로 한다.

산삼을 캐고 난 뒤에 심마니들은 단을 만들어놓고 산신령에게 산신제를 올린다.

심마니들은 산삼을 캐고 나서 정성스럽게 제를 안 올리면 재앙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심마니들은 산에서 서로 은어로 말하는대 심마니들이 주로 사용하는 은어는 다음과 같다.


<심마니들의 은어>

- 사람에 관한 것

심매마니(산삼 캐는 사람), 어인마니(노련한 채삼꾼), 소장마니(젊은 채삼꾼),

몽(꿈), 쥐아미(손), 황득(모닥불), 찌그린다(잔다), 실른다(피우다), 안침하다(휴식하다), 부루치(눈)

- 도구에 관한 것

마대(지팡이), 주루묵(망태), 놀림대(숟가락), 우렁기(밥공기), 감재비(낫), 잘매(도끼), 모둠(움막),

설피(신발), 더구레(저고리), 주제비(바지), 호련(성냥 부시), 우묵이(바가지), 도자(칼), 산재(젓가락), 새용(놋쇠 냄비)

- 산삼에 관한 것

심메(산삼), 내피(1년생 산삼), 왕초(큰 산삼), 오구(100∼200년생 산삼), 육구(200∼500년생 산삼), 마당심(산삼밭),

띠적났다(산삼이 무더기로 났다)

- 음식에 관한 것

모래미(쌀), 무루미(밥), 수음(물), 백사(소금), 질(된장), 흘림(술), 다부린다(먹는다)

- 짐승에 관한 것

산개(호랑이), 진대마니(뱀), 넙대(곰), 흑저귀(까마귀), 서산이(쥐), 마당너구리(개), 쿨쿨이 중머리(돼지)

- 자연에 관한 것

고무(소리), 백운성(계곡), 고분성(산줄기), 자래(나무), 찌기(돌), 건들레(바람), 히게(눈), 줄멩이(비),

데팽이(안개), 꽹과리(달), 노리개(해)

(김창식,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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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삼과 재배삼


인삼은 산삼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인삼의 수요에 비하여 물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인삼재배에 대한 연구가 민간에서 계속되었을 것이다.

이시진(李時珍)이 쓴 본초강목(本草綱目)에 의하면 1590년경 우리나라에서는 인삼을 재배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은 명나라 사람이 쓴 책이라 믿을 수 없다. 그리고 경북 영주군 순흥문화유적 관리사무소에서 발행한 안내팜플랫에 의하면

풍기군 인삼재배는 주세붕(周世鵬)이 풍기군수로 있던 1542년(중종 37년)에 처음으로 인삼을 재배하였다고 한다.

충남 금산군 남이면 개삼터 비석에 의하면 백제시대 강처사가 인삼을 처음으로 재배하였다고 한다.

필자의 견해로는 모두 불분명하다고 본다. ''문헌비고''에 의하면 인삼재배의 기원은 전라도 동복현(현재 화순군 동복면)에 사는 여자가 산중에서

삼씨를 구하여 그것을 밭에 심었더니 최씨라는 이가 전하여 파종하니 이것이 가삼(家蔘)의 시초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문헌비고는 영조 46년(1770년)에 완성된 책인 점을 감안한다면 이시진이 쓴 ''본초강목''에서 지적한대로 16세기경부터 인삼을 재배하였는지 모른다.

그러나 중종 25년(1530년)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이나 정조때(1776∼1795)

서유거가 쓴 임원십육지에 인삼재배지로 유명한 개성이나 금산이 들어있지 않은 것을 보면 본초강목의 기록은 오류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1770년에 간행된 문헌비고의 기록대로 전라도 동복현 최씨가 인삼재배를 시작한 것이 최초라고 할 수 있다.
속전(俗傳)에 의하면 동복현의 한 부인이 아들이 없어서 항상 하늘에 기도하였더니 하루는 밤에 꿈을 꾸었는데 백발노인이 와서 말하기를

네가 어느 산으로 오면 반드시 귀한 아들을 얻으리라 라고 하였다.

부인은 이상하게 여기고 기뻐하며 노인이 말한 산중으로 가서 찾았으나 아이는 없고 빨갛게 익은 삼 열매가 보였다.

부인이 그것을 캐었더니 뿌리의 형상이 옥동자와 같았으므로 그것을 가지고 가서 씨는 심고 뿌리는 약으로 남편에게 먹였더니

일년후에 아들을 낳고 삼도 잘되어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최씨는 조선의 삼이 천하에 귀한 것이므로 그것을 가지고 청나라로 가서 팔았다.

청나라는 아편에 병든 사람이 인삼을 약으로 쓰는고로 우리 고려인삼을 보고 심히 귀한 보물처럼 여겼다.

그러나 간혹 그것을 먹고 중독이 되는 경우가 있어서 최씨는 다시 증조하여 홍삼을 만들어 팔았더니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로부터 홍삼이 시작되었다. 삼신산인(三神山人)이 1928년 개벽사에서 발간한 ''별건곤''지에 기록한 사실을 보면 원나라 황제가

고려조정에 요청하여 인삼을 얻어간 사실을 보면 고려인삼이 명성을 떨치고 있음을 본다.

그는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동복인삼은 개성 상인들에 의하여 취종하여 상우묘삼(尙又苗蔘)의 종식법은 개성에서 인삼대왕이라 칭하는

손봉조(孫奉祚)의 중조가 되는 손경인(孫景仁)이 처음으로 발명하였다고 한다.

이를 따져보면 우리나라에서 인삼을 처음으로 재배한 것은 약 1828년경 손경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인삼재배는 전라도 동복에서 개성으로 개성에서 금산과 풍기로 인삼농사가 전파되었다고 하겠다.

인삼이라고 하면 본래 야생인 산삼을 말하였으나 점점 산삼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천연적으로 자란 산삼으로 수요를 감당할 수 없었다.

이미 고려말엽 충열왕때부터 중국의 끊임없는 인삼 요구와 우리나라 왕실용 확보를 위하여 중앙정부에서는 각 지방에 인삼을 할당하여 바치게 하였다.

각 고을의 수령은 또한 백성들에게 인삼채취를 할당하였다. 그 뒤에도 왕실에서는 수시로 인삼을 진상하도록 강요하였다.

그런 결과 강릉부 정선군에서는 평창군 가리왕산에 산삼채취를 금지하는 강릉부산삼봉표(江陵府山蔘封標)란 표석을 세우기도 하였다.

삼폐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인삼을 채취하지 못한 사람들은 고향을 등지기도 하였다.

이와같이 삼폐에 견디지 못한 백성들은 인삼을 채취하여 재배하는 방법을 모색한 나머지 드디어 인삼재배 기술을 습득하였던 것이다.


그 결과 전라도 동복에서 인삼재배에 성공한 결과 개성으로 인삼재배기술이 전파되고 그것이 금산과 풍기로 전파되었다고 생각한다.

강화도와 부여의 인삼재배는 주지하다시피 1950년 6.25전쟁으로 개성 피난민에 의하여 재배가 시작된 것이다.

우리 조상들의 인삼재배 기술은 천혜적인 우리 국토와 더불어 우리나라가 인삼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인삼재배를 위한 조건은 다음과 같다.

첫째, 연간 평균기온이 9°∼13.8℃이고, 여름에는 20°∼25℃가 좋다.
둘째, 연간 강우량은 1,100∼1,300㎜가 좋고 적설량이 적은 것이 좋다.
셋째, 일조량은 인삼이 반양반음(半陽半陰)을 좋아하는 식물이기 때문에 하루중 1/8∼1/13의 햇볕이 좋다.
넷째, 토양은 칼륨이 많은 곳이 좋은데 지표면 흙은 사양토(砂壤土)가 좋고 땅 속의 흙은 점토가 좋다.
다섯째, 지세는 동쪽과 북쪽 사이에 있으면서 8°∼15°정도 경사진 곳이 좋고 평지라도 배수가 잘되는 곳이면 좋다.
이와같은 조건에서 현재 우리나라의 인삼 산지는 제주도, 전라남도, 경상남도 전역과 전라북도의 일부 지방을 제외한 나머지 지방에서는 어디서나 인삼이 재배되고 있다.


(「''신비로운 산삼'' 나도 산삼을 캘 수 있다」 김창식 저, 도서출판 서신, 2001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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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삼의 생육

삼은 인삼의 본디말이며 속어로 ''심''이라고도 한다.

삼이란 말은 아직도 농가에서는 ''삼밭'' ''삼씨'' ''삼장'' ''삼캔다'' ''삼깎는다'' 등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또한 ''심''이란 말도 ''심마니'' ''심메마니'' ''심봤다'' ''심좋다'' 등으로 쓰이고 있다.
인삼이란 말은 뿌리 모양이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재배삼이 나오기 훨씬 전부터 사용되어온 이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후기까지 재배삼이 없었다.

그런데도 통일신라시대부터 문헌에 인삼(人蔘)이라고 표기된 것을 보면 인삼이 본래 재배삼을 일컫는 말이 아이고 산삼을 지칭하는 말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조선후기부터 삼 재배가 확산되고 재배삼이 다량으로 생산, 보급되면서 처음에는 가삼(家蔘)이라고 부르던 것이 차츰 인삼으로 불리어졌다.

따라서 본래부터 인삼이라고 불리던 천연삼은 산삼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인삼이란 명칭은 재배삼의 대명사가 되고 말았다.
삼에 대한 명칭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서 다양하게 변천되어 왔다. 삼이 생육된 장소에 따라서 이름이 다르게 불리어왔다.

산속 깊은 숲속에서 자생하며 성장한 삼을 산삼(山蔘) 또는 야삼(野蔘)이라고 부른다.

논이나 밭에다 전포(田圃)를 만들고 씨를 뿌려 자라게 하여 수확한 것을 포삼(圃蔘) 또는 가삼(家蔘)이라고 한다.

포삼 중에서 좋은 땅에 심었다가 캔 것은 양삼(養蔘) 또는 양직(養直) 이라 부르고 보통 밭에 심은 것을 직삼(直蔘) 또는 토직(土直)이라 한다.

밭에서 캐내어 깎지 않고 말리지 아니한 것을 수삼(水蔘)이라고 하며 햇볕에 건조한 삼을 백삼(白蔘)이라 하고,

솥에 넣어 쪄서 말린 것을 홍삼(紅蔘)이라 한다. 이것은 모두 가공 여부에 따라 붙여진 이름이다.

생산지역에 따라 지명을 따서 개성에서 생산된 삼을 송삼(松蔘)이라하고, 금산에서 생산된 것은 금삼(錦蔘)이라 한다.

평북 강계나 강원도에서 생산된 것을 강삼(江蔘)이라 하고 강원도 인제에서 생산된 것은 기삼(麒蔘)이라 한다.

그러나 지금은 재배여부에 따라 전답에서 재배한 삼을 인삼, 산에서 천연적으로 자란 삼을 산삼이라 한다.

산삼은 귀하고 값이 비싸기 때문에 사람들이 인공적으로 산에다 삼씨나 일년생 세근을 심어 두었다가 캐내기도 하는데

이러한 삼을 산양삼(山養蔘) 또는 장뇌삼(長腦蔘)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삼을 외국에서는 고려인삼 또는 고려산삼 등으로 통용되고 있다.


한국삼의 분포

삼은 앞에서 언급한바와 같이 한반도와 중국 만주지방과 러시아 연해주 일부지역에서만 생육하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약효가 좋은 삼은 한반도 남부지방에서 생산되고 있다. 이것은 기후와 토질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산유곡에서 천연적으로 자라난 산삼은 그야말로 산삼이 자리기에 알맞은 환경이 되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삼은 옛부터 고려인삼이라고 해서 주변에 있는 국가들이 계속 탐을 내어 조공을 바칠 때 첫 번째로 손꼽히는 특산품이었다.

그래서 관가에서는 삼이 생산되는 지역을 조사하고 관리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조선시대 성종때부터 편찬하여 중종 25년(1530년)에 완간된 신증 동국여지승람을 보면 각 고을마다 토산품으로 인삼이 생산되는 곳을 표기하여 놓았다.

이를 종합하여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경기도 : 영평 가평 삭녕
충청도 : 청풍 단양 괴산 청주 옥천 진천 영동 황간 청산 충주 영춘
전라도 : 무주 운봉 장수 진산 강진
경상도 : 영천 안동 영해 청송 예천 풍기 의성 영덕 봉화 진보 비안 예안 신녕
의흥 합천 칠원 상주 대구
강원도 : 강릉 삼척 양양 평해 간성 고성 통천 흠곡 원주 영월 정선 평창 인제
횡성 철원 춘천 회양 양구 금성 금화 안협 평강 울진 낭천 이천
황해도 : 서흥 안악 수안 곡산 토산 신계 우봉
평안도 : 창성 성천 순천 개천 덕천 은산 영변 희천 운산 태천 영원 벽동 위원
강계 삭주 귀성 곽산 양덕 이산

함경도 : 함흥 영흥 정평 고원 안변 덕원 문천 북청 홍원 삼수 단천 경성 명천
부령 회령 종성 은성 경원 경흥 이성 길성

이상 조사된 것을 한국지도를 놓고 살펴보면 1530년까지 현재의 전라남도 전라북도 서남지역, 충청남도 서북부지역, 경상남도, 경기도 일원, 황해도 서부지역, 평안남북도 서부지역은 인삼이 생산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해방전후까지 인삼생산지로 유명한 개성과 금산지역이 그 당시까지 인삼이 생산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재배인삼의 생산지인 개성과 금산이 시대적으로 훨씬 뒤에 인삼생산지로 떠오른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천연적인 산삼은 산악지역을 중심으로 자생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이 발간된 뒤 약 300년 후가 되는 정조(1770∼1795년)때에 서유거(徐有渠)가 저술한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에 나타난

인삼 생산지를 보면 다음과 같다.

경기도 : 양평
충청도 : 청풍 단양 괴산 청주 옥천 진천 황간 청산
전라도 : 무주 운봉 장수 진산 강진
경상도 : 영천 안동 영해 청송 예천 풍기 의성 영덕 봉화 진보 비안 예안 신녕
의흥 합천 칠원
강원도 : 강릉 삼척 양양 평해 울진 간성 고성 통천 흠곡 원주 영월 정선 평창
인제 횡성 홍천 철원 춘천 회양 양구 금성 금화 하천 안협 평강
황해도 : 서흥 안악 수안 곡산 토산 신계
평안도 : 창성 성천 순천 개천 덕천 은산 맹산 영변 희천 운산 태천 영원 벽동
초산 위원 강계 삭주
함경도 : 함흥 영흥 정평 고원 안변 덕원 문천 북청 이원 홍원 갑산 삼수 덕천
경성 명천 길주 부령 회령 종성 은성 경원 경흥

지금부터 약 200여년전 인삼생산지도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바와 크게 변화가 없다.

여기서도 개성과 금산은 기록에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 재배인삼은 200년의 역사도 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생산지로 기록되었던 지역이 많이 빠졌음을 알 수 있다.

즉, 경기도 가평 삭녕, 충청도 충주 영천, 경상도 상주 대구, 제주도, 강원도 하천 낭천 이천, 황해도 우봉, 평안도 귀성 곽산 양덕 이산,

함경도 이성 길성 등이 인삼 생산이 되지 않음을 볼 수 있다.

또 한편으로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인삼 생산지로 기록되지 않았던 전라도 장수, 강원도 홍천 하천, 평안도 맹산 초산,

함경도 이원 갑산 길주 등이 새로운 인삼산지로 등장했음을 엿볼 수 있다.


(「''신비로운 산삼'' 나도 산삼을 캘 수 있다」 김창식 저, 도서출판 서신, 2001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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