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삼과 재배삼
인삼은 산삼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인삼의 수요에 비하여 물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인삼재배에 대한 연구가 민간에서 계속되었을 것이다.
이시진(李時珍)이 쓴 본초강목(本草綱目)에 의하면 1590년경 우리나라에서는 인삼을 재배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은 명나라 사람이 쓴 책이라 믿을 수 없다. 그리고 경북 영주군 순흥문화유적 관리사무소에서 발행한 안내팜플랫에 의하면
풍기군 인삼재배는 주세붕(周世鵬)이 풍기군수로 있던 1542년(중종 37년)에 처음으로 인삼을 재배하였다고 한다.
충남 금산군 남이면 개삼터 비석에 의하면 백제시대 강처사가 인삼을 처음으로 재배하였다고 한다.
필자의 견해로는 모두 불분명하다고 본다. ''문헌비고''에 의하면 인삼재배의 기원은 전라도 동복현(현재 화순군 동복면)에 사는 여자가 산중에서
삼씨를 구하여 그것을 밭에 심었더니 최씨라는 이가 전하여 파종하니 이것이 가삼(家蔘)의 시초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문헌비고는 영조 46년(1770년)에 완성된 책인 점을 감안한다면 이시진이 쓴 ''본초강목''에서 지적한대로 16세기경부터 인삼을 재배하였는지 모른다.
그러나 중종 25년(1530년)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이나 정조때(1776∼1795)
서유거가 쓴 임원십육지에 인삼재배지로 유명한 개성이나 금산이 들어있지 않은 것을 보면 본초강목의 기록은 오류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1770년에 간행된 문헌비고의 기록대로 전라도 동복현 최씨가 인삼재배를 시작한 것이 최초라고 할 수 있다.
속전(俗傳)에 의하면 동복현의 한 부인이 아들이 없어서 항상 하늘에 기도하였더니 하루는 밤에 꿈을 꾸었는데 백발노인이 와서 말하기를
네가 어느 산으로 오면 반드시 귀한 아들을 얻으리라 라고 하였다.
부인은 이상하게 여기고 기뻐하며 노인이 말한 산중으로 가서 찾았으나 아이는 없고 빨갛게 익은 삼 열매가 보였다.
부인이 그것을 캐었더니 뿌리의 형상이 옥동자와 같았으므로 그것을 가지고 가서 씨는 심고 뿌리는 약으로 남편에게 먹였더니
일년후에 아들을 낳고 삼도 잘되어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최씨는 조선의 삼이 천하에 귀한 것이므로 그것을 가지고 청나라로 가서 팔았다.
청나라는 아편에 병든 사람이 인삼을 약으로 쓰는고로 우리 고려인삼을 보고 심히 귀한 보물처럼 여겼다.
그러나 간혹 그것을 먹고 중독이 되는 경우가 있어서 최씨는 다시 증조하여 홍삼을 만들어 팔았더니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로부터 홍삼이 시작되었다. 삼신산인(三神山人)이 1928년 개벽사에서 발간한 ''별건곤''지에 기록한 사실을 보면 원나라 황제가
고려조정에 요청하여 인삼을 얻어간 사실을 보면 고려인삼이 명성을 떨치고 있음을 본다.
그는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동복인삼은 개성 상인들에 의하여 취종하여 상우묘삼(尙又苗蔘)의 종식법은 개성에서 인삼대왕이라 칭하는
손봉조(孫奉祚)의 중조가 되는 손경인(孫景仁)이 처음으로 발명하였다고 한다.
이를 따져보면 우리나라에서 인삼을 처음으로 재배한 것은 약 1828년경 손경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인삼재배는 전라도 동복에서 개성으로 개성에서 금산과 풍기로 인삼농사가 전파되었다고 하겠다.
인삼이라고 하면 본래 야생인 산삼을 말하였으나 점점 산삼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천연적으로 자란 산삼으로 수요를 감당할 수 없었다.
이미 고려말엽 충열왕때부터 중국의 끊임없는 인삼 요구와 우리나라 왕실용 확보를 위하여 중앙정부에서는 각 지방에 인삼을 할당하여 바치게 하였다.
각 고을의 수령은 또한 백성들에게 인삼채취를 할당하였다. 그 뒤에도 왕실에서는 수시로 인삼을 진상하도록 강요하였다.
그런 결과 강릉부 정선군에서는 평창군 가리왕산에 산삼채취를 금지하는 강릉부산삼봉표(江陵府山蔘封標)란 표석을 세우기도 하였다.
삼폐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인삼을 채취하지 못한 사람들은 고향을 등지기도 하였다.
이와같이 삼폐에 견디지 못한 백성들은 인삼을 채취하여 재배하는 방법을 모색한 나머지 드디어 인삼재배 기술을 습득하였던 것이다.
그 결과 전라도 동복에서 인삼재배에 성공한 결과 개성으로 인삼재배기술이 전파되고 그것이 금산과 풍기로 전파되었다고 생각한다.
강화도와 부여의 인삼재배는 주지하다시피 1950년 6.25전쟁으로 개성 피난민에 의하여 재배가 시작된 것이다.
우리 조상들의 인삼재배 기술은 천혜적인 우리 국토와 더불어 우리나라가 인삼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인삼재배를 위한 조건은 다음과 같다.
첫째, 연간 평균기온이 9°∼13.8℃이고, 여름에는 20°∼25℃가 좋다.
둘째, 연간 강우량은 1,100∼1,300㎜가 좋고 적설량이 적은 것이 좋다.
셋째, 일조량은 인삼이 반양반음(半陽半陰)을 좋아하는 식물이기 때문에 하루중 1/8∼1/13의 햇볕이 좋다.
넷째, 토양은 칼륨이 많은 곳이 좋은데 지표면 흙은 사양토(砂壤土)가 좋고 땅 속의 흙은 점토가 좋다.
다섯째, 지세는 동쪽과 북쪽 사이에 있으면서 8°∼15°정도 경사진 곳이 좋고 평지라도 배수가 잘되는 곳이면 좋다.
이와같은 조건에서 현재 우리나라의 인삼 산지는 제주도, 전라남도, 경상남도 전역과 전라북도의 일부 지방을 제외한 나머지 지방에서는 어디서나 인삼이 재배되고 있다.
(「''신비로운 산삼'' 나도 산삼을 캘 수 있다」 김창식 저, 도서출판 서신, 2001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