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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05   암벽 등반. 
2007.01.16   여러가지 매듭법. 
2006.09.13   등산의 역사 
2006.09.13   암벽 등반이란? 1
  암벽 등반.  +   [자료실]   |  2007. 2. 5. 16:31
1. 암벽등반 정의
암벽등반이란 등산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의 하나로서 급한 바위사면을 특별한 장비와
적절한 기술(매듭법, 확보법, 장비사용법, 등반법)로서 안전하게 오르는 행위이다.
- 중력, 날씨, 낙석 그리고 피로 등의 어려움을 정신력, 육체적 그리고 적절한 기술로서
극복하고 올라가는 것.
2. 기본원칙
암벽등반의 기본은 수직에 가까운 바위에서 어떻게 스탠스와 홀드를 잘 이용해 몸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올라가느냐 하는 것이다. 즉 몸의 발란스를 잘 유지하면서 3점지지에 따라
리듬을 갖고 올라가는 것이 암벽등반이다. 그리고 암벽등반도 등산의 기본인 걷는 것과
마찬가지로 손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발로 올라가야 한다. 암벽등반은 평지에서 걷는
것이 아니라 수직에 가까운 바위사면에서 걸어올라 가는 것이다.
암벽등반에서 육체적인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또한 정신적(심리적)인 안정도 필요
하다. 암벽은 오를 때는 자신감을 가지고 침착하고도 신중하게 올라야 한다. 높은 수직암벽에서 고도 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자신감도 읽어버리고 허둥댄다면 오르기는커녕 추락해
버린다. 그러므로 암벽등반을 잘하기 위해서는 먼저 육체적인 힘을 기르고 등반기술을 잘
연마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언제 어떤 암벽을 오르게 되더라도 자신 있게 오를 수 있다.
(1) 유연성
암벽 등반의 모든 기술은 유연성이 좋아야 잘 적용되며 힘도 덜 들어간다. 예를 들어 하체
유연성이 떨어져 높이 있는 스탠스에 발을 올려 딛지 못하거나 벌려 딛지 못한다면 그만큼 팔에 의지하게 되어 팔의 피로를 가중시킨다.
모든 암벽 등반은 허리의 유연성을 많이 요구하며 허리와 다리, 어깨의 유연성이 좋으면
스탠스와 홀드를 훨씬 폭넓게 사용할 수 있어 팔의 힘도 절약할 수 있다.
(2) 균형유지(Valance)
암벽 등반시 균형 유지는 대단한 역할을 한다. 균형 유지는 지지점의 어느 쪽으로 체중을
싣는 가에 달려 있다. 체중을 발이나 팔로 적절하게 분산시키거나 한쪽으로 유지하는 요령이 빨라야 한다.
예를 들어 오른발로 가야 할 체중이 왼발로 가 있다면 균형이 흐트러지며 팔의 힘이 그만큼 더 들어갈 것이다.
균형유지에 신속하지 못하거나 무시한다면 기술 적용에도 부담이 많다. 이렇듯 같은 기술을 가진 등반자들끼리도 균형 유지를 잘하는 등반자는 등반을 훨씬 수월하게 하는 반면 좋은
기술과 힘을 가지고 있은 등반자일지라도 균형 감각이 떨어진다면 그 만큼 어려운 등반이
이루어진다. 따라서 균형 유지는 기술 등반을 할 때 매끄러운 등반이 이뤄진다.
(3) 3점지지
사람이 암벽을 오르는데 사용할 수 있는 지점은 4지점이다. 손과 발을 합해서 4개의 지점 중 3지점으로 지탱하고 1지점인 손이나 발을 움직여서 다음 호울드에 서기 위한 동작 사이에
3지점은 중심 유지 작용을 한다.
4지점일 땐 움직이지 못하는 정지 상태가 된다. 그래서 암벽등반에서 3지점에서 4지점 다시 3지점 4지점순으로 진행이 된다.
3. 암벽등반 장비 및 사용법
1) 암벽 등반장비

자일
*자일고르기 - 등반용 자일은 그 굵기가 8mm∼12mm까지 여러 가지며 길이는 40m∼100m인것을 쓴다. 등반자의
등반양식, 암벽의 길이, 목적 등에 알맞은 굵기와 길이를 골라 써야한다.
특히, 방수 처리된 자일을 고르는 것이 빙벽 등반과 우천시 유리하고 UIAA 검정품을 사용함이 바람직하다.
외 줄(single rope) 등반시 10.5mm와 11mm를 많이 쓰고 있지만 등반에 따라 10mm나 12mm를 쓰기도 한다.
두 줄(double rpoe) 기술에는 8.5mm나 9mm를 많이 쓰고 길이는 80m∼90m를 많이 쓴다.
쌍 줄(twin rpoe)은 8mm, 8.5mm를 많이 쓰고, 두줄을 겹쳐서 한줄처럼 쓰는 기술은 11mm 한 줄보다 떨어질 때 더 안전하다.
* 자일 관리 - 자일은 생명과 연관되는 것이므로 소중이 다루어야 한다. 자일을 밟는 것은 많은 등반자들이 저지르는 자일 학대의 대표적인 것이다.
자일을 밟으면 흙과 먼지 같은 입자가 껍질을 통해서 들어가 마찰을 일으키므로 주의해야
한다. 자일을 쓰고 난 뒤에는 항상 자일 점검 및 청소를 하여야 한다.
자일 사리기에는 나비 모양 사리기, 둥글게 사리기, 8자 모양 사리기등이 있으나 꼬임
방지나 자일의 보관상 나비 모양 사리기를 권한다
슬링(sling)
연결줄(runner)이라고도 부르는 슬링은 테이프 슬링과 롤 슬링으로 나누어진 긴 끈으로
등반장비 중 가장 많이 쓰는 것 중 하나이다. 등반 중에 확보물과 비너를 잇고, 나무나
바위에 둘러 확보지점을 만들때나 위급하고 중요한 연결에 여러 가지 용도로 쓰인다.
요즘은 박음질이 되어진 슬링도 많이 나와 있으므로 취향에 따라 사용한다.
퀵드로우
테이프 슬링에 박음질을 하여 앞뒤로 카라비너를 걸어서 쓸 수 있는 슬링 대용품이다.
등반시 자일의 꺾임을 원활하게 할 수 있으며 확보물 설치시 시간 단축에서 한몫을 한다

안전벨트(safe belt)
안전벨트는 상단, 하단으로 구분되어 있다. 크게 일반용, 겨울용과 자유등반용이나 경기등반용으로 나눌 수 있다.
겨울용은 오랫동안 써도 강도가 떨어지지 않도록 튼튼하게 만들어져 있고,허리 벨트와 다리 고리가 두꺼워서 오랜시간 매달려도 편하도록 제작되어 있다. 겨울용은 허리 벨트에 스폰지가 들어있지 않아 눈이나 물이 베어들어 얼어붙는 것을 방지한다. 자유 등반용과 경기 등반용은 가볍고 부피가 작다.
추락시 충격을 골고루 신체 부위에 가는 제품으로서 잘 맞는 제품을 선택해야 한다. 안전
벨트는 뛰어난 탄력 복원력을 가지고 있으며, 강도와 내구성이 뛰어나지만, 가볍게 만들어진 요즘의 제품은 3∼5년이 지난 다음에는 쓰지 않는 것이 좋다.

카라비너
금속으로 된 개폐구가 있는 고리로서 등반시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한다.
비너는 O형 카라비너, D형 카라비너, 변형D형 카라비너,잠금 카라비너, 특수 용도 카라비너가 있으며, 변형 D형 카라비너는 여닫는 곳이 더 넓게 만들어져 여러 가닥의 자일을 걸거나 빼낼 때 편리하다.
*카라비너를 쓰고 관리하는 데 알아두어야 할 지침
→ 항상 긴 쪽이 힘을 받도록 한다.
→ 특히 여닫는 곳이 힘을 받아서는 안된다.
→ 여닫는 곳이 열린 상태에서는 긴 쪽으로 힘을 받더라도 강도는 크게 약해진다.
→ 우연히 여닫는 곳이 열릴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일이 여닫는 곳의 바깥쪽에 걸쳐져 힘을 받으면 자일은 쉽게 비너에서 빠져 나온다.
→ 여닫는 곳은 항상 부드럽게 움직여야 하고, 더구나 긴 쪽으로 힘을 받고 있는 상태에서
자유롭게 열 수 있어야 한다.
→ 여닫는 곳이 뻑뻑하거나 더러우면 기름, 석유, 가솔린, 혹은 WD40 같은 것으로 닦아낸 다음 끓는 물에 20초 정도 담가 닦아 댈 때 썼던 기름을 없앤다.
→ 높은 곳에서 떨어진 카라비너는 쓰지 말아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은 아주 작은 금이 가 있을 수 있다
→ 등반 중에 바윗길에 걸려 있는 카라비너나 바위 아래에서 주운 카라비너는 쓰지 말아야 한다.

암벽화
암벽화의 바닥은 탄력이 있는 고무창으로 바위면에서 마찰력이 뛰어나다. 바위 모양새에 따라서 용도에 맞추어 신을 수 있는 여러 가지의 종류가 있다.

헬멧
낙석이나 낙빙, 추락 시 머리를 보호하는 용구가 헬멧이다. 그러나 요즘에는 많은 사람들이 불편함과 멋을 내기위해 쓰지 않는사람도 있다. 이러한 일은 잘못 된 것이고 언제 낙석에 맞을 지 모르는 일이므로 등반 준비를 할 때부터 등반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꼭 써야한다.
헬멧을 고를 때에는 UIAA 인정 표시가 있는 제품이 ?을수 있고 될 수 있으면 머리에 잘 맞는 제품을 착용해야 안전하다.

하강기
하강시 안전하게 하강할수 있도록 사용하는 도구이며 간혹 확보시에도 사용하기도 함.
초기엔 대부분 8 자로 된 모양이었으나 요즘은 다른 모양의 신형이 많이 사용된다.

초크색
탄산마그네슘 가루를 담아서 등반시 손에 묻혀 사용하는 주머니이다
너트
크랙의 사이에 끼어 넣어 지지력을 얻는 확보물이다.
크랙 등산시 많이 이용되며 설치와 회수가 용이하다. 크랙의 모양새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제품이 있다.
마이크로너트
너트를 사용할 수 없는 미세한 크랙에 사용한다.
프렌드
크랙 속에 끼워 넣어 양쪽 날개가 벌어지면서 지지력을 얻는 확보물이다. 미세한 크랙에
사용되는 것부터 주먹보다 더 큰 대형 사이즈까지 다양하다.
로우볼
프렌드나 너트를 사용할 수 없는 미세한 크랙에 넣어 확보물로 사용한다.
러프( R.U.R.P : Realized Ultimate Reality Piton)
작고 가느다란 틈새에 끼워서 손도끼처럼 생긴 우표 크기만한 피톤이다.
버드 피크
러프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지만 러프보다 길이가 길고 걸거나 빼기가 쉽다.
크래킹 업 ( crack'n-up )
피톤, 스카이 훅, 캠의 좋은 점을 따서 만든 것으로 가느다란 바위 틈새에서 쓰기 좋다.
코퍼헤드 ( copperhead )
하켄이나 프렌드를 사용하지 못할 정도의 미세한 벙어리형 부분에 데어 해머로 두들기면 바위 모양세에 따라 파고 들어간다. 연한 금속 재질로 되어 있어 변형되면서 파고 들어간다.
서클헤드 ( circlehead )
철선이 고리 모양을 만들면서 한 개 이상의 구리 형철이 달려 있는데, 코퍼헤드처럼 구리 형철을 바위에 찌그러뜨리면서 때려 박는다.
하켄
크랙 속에 넣어 해머로 두들겨 박아서 확보물로 사용한다. 나이프 하켄, 앵글 하켄등이 있다.
스카이훅
크랙 속에 끼워 넣어 사용하며 큰 홀드나 미세한 엣지나 돌기 부분에 걸어 지지력을 얻어 사용한다. 사이즈가 다양하다.
피피
자기 확보줄의 비너와 비슷한 일을 하면서 인공 확보물에 빠르고 쉽게 걸거나 뺄 수 있어 더 편할 때가 있다. 잠금 장치가 없으므로 조심해서 사용해야 한다.
도르래
짐을 끌어올릴 때 로프를 걸어 사용하며 제동장치가 있는 것과 없는 것 두 가지가 있다.

크랙의 상태가 넓은 곳에 박아서 사용하는 확보물이다.
에뜨리에
수직벽이나 오버행의 인공등반, 홀링시 사용한다.
쥬마
등강기로서 쥬마링, 홀링, 확보시 사용한다.

장비착용 요령
→장비는 안전벨트 좌우 측에 적당히 분리해서 착용한다.
→카라비너는 아래서 위쪽으로 걸어 두어야 사용시 빼내어 쓰기 편하다.
→장비가 많이 사용되는 루트에서는 기어랙을 사용하여 장비를 착용한다.
→등반하고자 하는 루트가 확보물 등 어느 장비가 몇 개가 사용되는지 미리 계산하여 필요한 장비만 휴대한다. 예를 들어 불필요한 장비를 많이 착용하면 등반시 겉치장스럽고 무게로
인해 등반에 많은 지장을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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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가지 매듭법.  +   [자료실]   |  2007. 1. 16. 12:14
http://blog.paran.com/leepurun/16020361
매듭 묶는 법
8자매듭
안전벨트에 직접 묶을 경우 선등자 용이나 카라비너를 이용하여 중간 매듭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며, 또한 가장 강한 강도의 매듭으로 강한 충격에도 쉽게 풀수 있는 장점이 있다. 등반 중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매듭이기도 하다. 8자 매듭은 선등자용 되감기 8자 매듭, 중간 등반자용 8자매듭, 두 줄을 연결할때 사용하는 되감기 8자매듭 이 있다. 8자 매듭은 충격이나 얼었을 때에도 쉽게 풀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카라비너에 직접 연결할 경우나 안전벨트에 직접 매듭을 할 경우에도 매듭의 고리를 가능하면 작게 만드는 것이 좀 더 안전하다.




보울라인 매듭
매듭법 중에 가장 일반적이고 대표적인 매듭으로서 많은 변형이 있고, 또한 순서도 여러 가지가 있다.
선등자 매듭으로 로프에 직접 매듭을 하거나, 나무나 움직이지 않는 고정 확보물 등에 매듭을 할 경우에 많이 사용한다. 또한 안전벨트가 없을 경우 가장 빠르게 몸에 묶을 수 있어 임시용으로 잠시 매는 매듭으로 많이 사용한다. 일단 매고 난 뒤에는 잘 움직이지 않아서 선등자나 후등자가 종종 매듭을 사용하지만, 매듭이 뒤집어 질 경우 에는 쉽게 풀릴 수 있는 단점이 있어 반듯이 정확하게 매듭이 되었는지 확인하여야 하며, 끝은 반드시 옭매듭 처리를 해주어야 한다.

피셔맨 매듭
두 줄을 연결할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매듭으로 가장 확실한 매듭이며 어부매듭으로 불리우고 낚시줄을 묶는데
에도 많이 사용한다. 이 매듭의 특징은 힘을 받으면 받을수록 더욱 단단하게 매듭이 되는 점이다.
이때문에 충격을 받거나 얼었을 경우에는 풀기가 힘든 단점이 있다. 잘 풀지 않는 곳에 매듭을 한다면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매듭이며, 매듭의 모양이 예쁘기 때문에 선호하기도 한다. 또한 가는 코드 슬링을 연결할 때 많이 사용된다. 배낭 멜빵에 예쁘게 코드슬링으로 고리를 만들어 달고 다니는 경우가 많으며 배낭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질때 종 종 잡아당기는 고리로 사용할 때 좋다.



에반스 매듭
나무나 고정된 확보물에 매듭을 할 때 주로 사용되며, 당기면 당길수록 힘을 받으며 풀 때에는 긴 줄 쪽으로 고리를 당기면 쉽게 풀 수 있다. 몸에 직접 묶으면 조여지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으며, 안전벨트에 카라비너를 이용하여 묶어야 한다. 얼었을 경우에도 쉽게 풀린다.
플라이나 걸개를 걸때 고정된 곳에 묶을 때 편리하며 미리 고리를 만든 후에 높은 곳으로 올리기에 편해서 한쪽은 에반스 매듭으로 처리하고 다른 한쪽은 까베스탕 매듭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푸르지크 매듭
비상용 매듭으로 많이 사용되며, 반드시 굵기가 다른 줄 간에 사용되어야 하며 주 로프보다는 가는 5~7mm 정도 의 가는 코드 슬링을 이용하여 사용하는 것이 안전하다.
초보자의 하강시에 푸르지크 매듭을 이용하여 하강기 위쪽에 걸어서 보호 장치로 사용할 수 있으며 두개의 푸르지크 매듭을 이용하여 등강기 대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비상매듭으로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두개의 푸르지크 매듭을 이용할 경우에를 대비하여 가는 코드 슬링이 여러개 가 있으면 비상시에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단독 등반시에도 솔로이스트가 없을 경우 임시방편으로 사용할 수 있다.


까베스탕 매듭
양쪽의 줄을 고정할때 쓰이는 매듭으로 반까베스탕을 사용시에는 매듭을 한 상태에서도 길이를 조절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등반 중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매듭이다. 쉽고 빠르게 매듭을 할 수 있으며, 또한 힘을 받거나 얼었을 경우에도 쉽게 풀 수 있다. 로프를 잠깐 고정 확보물에 묶어 두거나,등반 중에 자기 확보를 할 경우에 많이 사용되며 끝줄을 이용하여 묶 을 경우에는 반드시 옭매듭으로 마무리 처리를 해야 한다.
우면서도 의외로 헷갈리기 쉬운 매듭으로 다양하게 사용되며, 반 까베스통 매듭과 함께 익혀두면 상당히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스퀘어 매듭
등반에는 잘 사용되지 않는 매듭이지만,간단히 매듭을 할 수 있고 편리성 때문에 일반적으로 자주 사용되며 사각매듭이라고도 한다 매듭하기 쉽고, 풀기 쉬운 장점이 있는 반면에 쉽게 풀릴 수 있어 정확하게 사용하여야 한다. 주의점은 매듭시 로프의 끝이 같은 면에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엇갈려서 매듭을 하였을 경우에는 가벼운 움직임에도 쉽게 풀어져 위험 할 수 있다. 스퀘어 매듭을 이용하여 두줄을 연결할 경우에는 더 확실하게 하려면 양 끝을 이중으로 옭매듭하는 것이 확실하다.
테이프(슬링)매듭
테이프 슬링을 묶었을 경우에는 매듭을 한쪽에 한 후에 면을 따라서 꼬이지 않도록 하여 매듭을 한다.
테이프 매듭의 단점은 사용하지 않을 경우 시간이 지나면 풀릴 수있기 때문에 사용하기 전에 반듯이 매듭을 확인하여야 하며, 매듭의 끝이 항상 4~5cm 정도 여유가 있어야 한다.

옭 매듭
모든 매듭의 기본이 되는 매듭으로서 흔히 막매듭,OverHand Knot으로 불리운다
8자매듭으로 선등자,후등자용 및 두줄을 연결할 때 피셔 맨 매듭과 스퀘어 매듭으로 두 줄을 연결할 때 선,후등자가 보울 라인 매듭을 사용할 때, 에반스 매듭을 사용할 때 등 여러가지 매듭을 하고서 마지막에 옭매듭을 하여서 매듭이 풀리는 것을 예방한다.


자일 사리는 법
과거에는 동그랗게 사리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최근에는 나비처럼 양옆으로 벌려서 사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동그랗게 사리는 법은 줄을 메고 가기 편리한 점이 있다. 줄의 마감 처리는 사각매듭으로 묶거나 짧게 남은 줄로 미리 고리를 만든 후에 그 위로 고리에서 먼쪽부터 긴 줄을 감은 후 남은 끝줄을 고리에 끼운 후 반대편에서 당기면 된다. 배낭이 없을 경우에는 사린 줄의 양쪽 끝을 약 1미터 정도 다시 푼 후에 사려놓은 가운데 부분을 돌려 감은 후에 어깨에 올려 맨 후에 허리로 되감아서 매듭하면 편하게 들고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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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산의 역사  +   [자료실]   |  2006. 9. 13. 17:35

자료 출처ㅡ신구 대학 산악부.

    ◐◑ 등산의역사 ◐◑

등산의 역사는 도전과 극복의 역사다. 이는 험난한 대자연에 도전하면서 끊임없이 인간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해 온 과정이다. 지난200여 년 동안 등산은 빠른 속도로 발전해 왔다. 처음에는 인간의 능력으로 오르지 못했던 높은 산의 정상에 도전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했지만 차츰 미답봉이 없어지자 대자연을 대상으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는 새로운 도전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오늘날 지구상에는 사람의 발길이 닫지 않은 미지의 세계는 거의 없다. 그러나 높이를 추구하고 어려운 자연환경을 극복해 나가려는 인간의 욕구는 당산의 영역을 새롭게 넓혀 나가고 있고 앞으로도 그러한 도전은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 근대등산의여명기 ◐◑

    근대 등산 이전의 기록

근대 등산이 시작되기 이전에도 산에 오른 기록들이 발견되고 있다. 기원전 328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카블(Kabul)을 공략하기 위해 힌두쿠시(Hindu Kush) 산맥을 넘었으며, 기원전 218년 에는 카르타고의 한니발(Hannibal) 장군이 로마제국을 공격하기위해 알프스의 크라이넨 생 베르나르(Kleinen st, Bernard)를 넘은 기록이 있지만 이것은 군사적인 목적에서 산에 오른 기록이다. 등정을 목적으로 암봉에 오른 최초의 기록은 1492년 프랑스 드페네 알프스의 암봉 몽테까유(Mont Aiguille, 2,125m)등정이다.

1521년에는 스페인의 코르테스(Cortes)가 자기 병사에게 명하여 멕시코의 화산 포포카테페르(Popcateper 5,450m)를 등정케 했다. 이 등정은 정상에서 화약 제조용으로 쓸 수 있는 유황을 체취해 오는 것이 목적이었다.

1574년에는 사상 최초의 등산 기술서가 출판된다. 이 책은 취리히 대학의 요자이스 짐러(Josias Simler) 교수가 눈 덮인 알프스를 넘는 여행가들을 위해서 설상 보행 기술, 로프 등의 사용법과 크레바스와 눈사태의 위험 등을 언급한 책이다. 이러한 기록들은 수수한 등산이 그 목적으로 자리잡기 이전어ㅔ 이루어진 연속성이 없는 행위였다.

소쉬르의 제언가 몽블랑 초등

1760년 어느날 제네베의 자연과학자 소쉬르(Horace Benedict de saussure)는 프레방(2,526) 산에 올라 맞은편에 있는 몽블랑을 보고 그 장엄함에 감동한 나머지 '누구든지 이 산에 오르는 사람에게 상금을 주겠다.' 고 현상금을 내걸었다. 그는 아무도 오르지 못한 이높은 산의 신비한 정체를 밝히고 싶었다. 그 당시는 많은 사람들이 이 산을 두려워했다. 몽블랑의 몽(Mont) 은 프랑스어로 '산(Mountain)'이며 블랑(Blanc)은 '힌빛(White)' 으로 '언제나 하얀 만년설이 덮인 산' 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 당대의 위대한 과학자조차 만년설로 덮인 알프스의 산 속에는 용이 살고 있다고 주장할 정도였다. 1783년과 1785년에 두 차례의 도전을 시도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기상 탓으로 모두 실패했다. 이 두번의 도전에 동참했던 사람 중에는 훗일 몽블랑의 첫등정자가 된 샤모니의 의사 미셜 가브리일 빠가르(Michel Gabriel Paccard)가 끼어 있었으며, 그는 두 번의 실패를 경험 삼아 초등정에 성공한다. 몽블랑의 첫 등정의 쾌거는 1786년 8월 8일에 이루어졌다. 미셀 빠가르와 포터로 고용된 수정 채취꾼인 자크 발마(Jacque Balmar)가 마침내 정산 등정에 성공한다. 이떄가 프랑스 혁명 3년 전으로 소쉬르가 현상금을 걸은지 26년이나 지난 뒤였다. 이로써 알프스의 산이 공포와 신앙의 대상이었던 시대는 막을 내린다. 이 두사람은 2,392m의 높이에서 비박을 한 후 고산병과 설맹, 동상 등의 증세에 시달리면서 등반을 감행했다. 로프나 크램폰 같은 장비도 없이 크레바스를 건너고 깊은 눈을 헤치면서, 비박지를 출발한지 15시간만에 몽블랑 정상에 오른다. 이들이 사용한 용구는 알펜 슈톡(등산용 지팡이)과 간단한 방한복, 기압계, 온도계 등의 기구와 약간의 식량이 전부였다. 이 도전은 당시 상황으로는 목숨을 건 대모험이었다. 등산이라는 말조차 없던 시대에 이들이야말로 미지의 세계를 정복한 선구자라고 볼 수 있다. 혹자는 이 몽블랑 초등정이 소쉬르가 내건 현상금을 목적으로 올랐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등산 효시는 그 이듬해로 보아야 한다는 으견을 내세우기도 한다. 그 이듬해에는 바로 소쉬르가 20여명의 짐꾼을 고용해 직접 두 번째 몽블랑 등정을 이루어 내기 떄문이다. 소쉬르는 이떄 정상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가지고 간 계기를 사용해 몽블랑의 높이를 4,755m로 측정한다. 미셸 빠가르가 한해 전인 첫 등정때 측정한 높이는 4,738m였다 소쉬르가 측정한 실제 높이(4,807m)에 더 가깝다. 소쉬르는 진정한 의미의 등산을 시작하는 첫 계기를 마련했고. 스스로가 몽블랑 재등에 성공한 인물로 '근대 산악의 아버지' 라고 불린다

    ◐◑ 등산의 황금기 개막 ◐◑

알프스 초등정 시대

몽블랑 등정으로 이후 알프스의 여러 고봉들이 많은 개척자들의 도전을 받게 되고, 하나 둘씩 등정되기 시작하였다. 몽블랑 등정 이후, 주목을 받게 된 산은 알프스 제2의 고봉인 몬테로자 (MonteRosa)였고, 이 봉우리 중 하나인 푼타 조르다니(Punta Jordani, 4,055m)가 1801년에 초등정된다. 1811년에는 베르네의 알프스의 융프라우(Jungfrau. 4,167m) 1850년에는 동부 알프스에서 유일하게 4,000m가 넘는 피츠베르니나(Pizbernina. 4,052m)가 등정된다. 알프스의 황금기는 1854년 난공불락으로 여겨 왔던 베터호른(Wetterhorn. 3,701m)의 등정을 시작으로, 1865년 4,000m 봉우리 가운데 최후의 난봉이던 마터호른의 등정으로 일단락 된다. 이 기간에 무려 60개가 넘는 4,000m 높이의 고봉들이 모두 등정되었다. 세계 등산사에서는 이 12년의 기간을 이른 바 '알프스 등산의 황금시대' 라고 한다. 기록에 의하면 1859년에서 1865년 사이에 149개의 알프스 고봉이 초등정 되었다. 순수 등산을 뜻하는 '알피니즘' 이란 이름이 탄생한 것도 바로 이 시절이다.

알프스의 황금시대는 단연 영국인들의 활약이 돋보였던 시기다. 황금시대의 시작과 끝맺음의 주역이 모두 영국인이었다. 이는 산업 혁명을 바탕으로 한 영국의 경제력과 국력의 반영이기도 했다. 알프스의 미답봉들을 선두에서 섭렵하던 영국은 1857년 12월 22일 세계 최초의 산악회인 '알파인 클럽(The Alpine Club)'을 창립한다. 이들은 산악회 명칭에 구태여 영국이라는 국명을 넣지 않았을 만큼 대단한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다. 알파인 클럽은 1863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연감인<알파인 저널 : The Alpine Journal>을 창산하여 오늘날까지 발행하고 있다. 영국 산악회에 뒤이어 1862년에는 오스트리아 산악회가(Osterreicher Alpenverein, 약칭 OVA)가, 1863년에는 스위스(Sehweizer Alpin Club, 약칭 SAC)가, 1869년에는 독일 산악회(Deutscher Alpenverein, 약칭 DAV), 1874년에는 프랑스 산악회(Clube Alpin Francais, 약칭 CAF) 등 유렵 열강들이 하나 둘씩 산악회를 창립한다. 19세기 알프스에서 수많은 초등이 이루어진 배경에는 이들 각국 산악회들이 경쟁적으로 등반 활동을 벌인 것도 그 이유 중의 하나다. 또한 황금시대는 등산 가이드들의 활약상이 두드러졌던 시기다. 영국인의 화려한 초등정 배경에는 현지 가이드들의 활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가이드레스 등반과 단독 등반

현지 등산 가이드들의 활약은 초기에는 미진했으나, 점차 기량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알프스의 황금기에 이르러서는 수많은 초등정들이 이들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이루어 낼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런 시기에도 가이드의 힘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만으로 등반을 하는 가이드레스 등반을 시도한 사람들이 있었다. 1857년 영국의 허드슨(Hudson), 케네디(E. S. Kennedy), 에인슬러(Ainsli), 스마이스(Smyth) 형제 등이 가이드레스 등반의 첫 문을 열었다. 이들은 클라인 마터호른(Kleni Matterhorn), 브라이트호른(Breithorn), 몽블랑 등에서 가이드레스 등반을 성공시킨다. 이들의 등반은 가이드레스 등반의 효시로 기록된다. 가이드레스 등반이 성행하던 1865년부터 1차세계대전 직적인 1914년까지로 보고 있다. 당시 영국의 등산가는 전통적인 부유 계층이었기 때문에 알프스 가이드들을 쉽게 고용할 수 있었지만.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산은 대중적이고 중산 계급이 주로 즐겼기에 실력있는 가이드를 고용하기가 벅찼다. 자연스럽게 가이드레스 등반이 발달하게 되었고, 나아가 단독 등반도 불사하는 도전이 감행되기 시작한다. 당시 루드빅 푸르첼러(Ludwig Purtscheller)와 에밀 치그몬디(Emile Zigmondy), 오토 치그몬디(Otto Zigmondy) 형제는 당대를 대표할 만한 가이드레스 등반을 실천한 산악인이자 단독 등반가였다. 또한 대표적인 단독 등반가로는 오스트리아의 게오르 빈클러(Georg Winkler)를 꼽을 수 있다.

    ◐◑ 한국의 등반사 ◐◑

년 도

주 요 내 용

1929년

영국인 공사관 아처(C.H.ARCHER)는 페이시(E. R. Paccy), 일본인 야마나카(山中)와 인수봉을 등반하다. 이는 기록상 한국 최초의 암벽 등반으로, 이들은 인수봉 정상에서 이미 이 땅의 선조들이 남긴 발자취를 보았다고 말했다.

1931년

일본인 이야마와 이누마가 금강산 비로봉(1,638m)에서 처음으로 스키 등산을 하다.

한편, 조선에 거주하는 일본인 중심으로(조선인이 합류) '조선산악회'가 창립되고, 회지 <조선산악>을 창간하다.

1935년

양정고보 영어교사인 황욱이 <월간 중앙> 7월 호에 기고한 ' 록크 크라이밍과 그 지식' 은 암벽 등반에 관한 우리 나라 최초의 글일 것이다. 황욱은 당시 일본의 입교(立敎)대학 산악부 출신이다.

이듬해인 1936년 국내 최초의 여성지<女性> 창간호에 이화여전 하이킹클럽과 경성체육학교 하이킹클럽이 소개되다. 한편, 1월에는 일본의 경도제대 산악부가 극지법을 사용해 백두산(2,750m)을 동계에 초등하고, <백두산 원정 보고서>를 펴냈다.

1937년

조선인으로 구성된 첫 산악회 "백령회(白嶺會)" 가 창립되어, 당시 엄흥섭,김정태,주형열 등 백령회의회원들은 활발한 등반 활동을 하였다.

또한 "양정고보 산악부" 가 학교 산악회로는 처음으로 창립하다.황욱이 초대 지도교사를 맡았다. 양정고보 산악부의 전신으로 30년대 초부터 "무레사네(물에산에)"라는 이름의 건실한 등산 모임이 있었다.

1945년

8.15해방과 더불어 백령회의 회원이 주축이 되어 9월15일 '한국산악회'를 창립하다. 이는 사회단체로는 두 번째로 정부에 등록된단체이며, 북한산 비봉에서 광복기념 등산회를 개최하다.

1946년

한국산악회는 최우선 사업으로 국토구명 학술조사를 대대적으로 전개키로 하고,2월 한라산을 시작으로 오대산과 태백산맥, 울릉도와독도, 차령산맥 그리고 서해고도와 다도해 등 1955년까지 총 11차례에 걸쳐 전 국토의 학술조사를 실시한다.

한국산악회는 최초로 지방지부(경남지부,경북지부)를 설치한다.

한편 한국산악회는 9월 인왕산, 북한산에서 '제1차 암벽 등반(Rock Climbing)강습회'를 개최하다.

36명이 참가한 이강습회는 일반 산악인을 위한 최초의 등산교육으로 기록된다.

1949년

경희대 산악부, 서울대 산악부 등 대학산악부가 창립되기 시작하다.

1957년

경북학생연맹이 최초로 지방연맹체를 창립하다. 경북학생산악연맹은 최초로 종합 정기간행물<산악>을 발간하였다(1961년).

1962년

군사정권이 수립되면서 정부의 유사단체 통합령에 의해 대한 산악 연맹을 창립하다.

한편 우리 나라 최초의 히말라야 원정이 이루어진다. 경희대산악부가 다울라기리2봉의 정찰 등반을 하였다.정찰활동중 무명봉(6700m)을 등정하고, 박철암 대장은<히말라야 다울라기리 산군탐사기>란 제목으로 정찰보고서를 펴냈다.

1967년

대한산악연맹 산하 조직으로 서울특별시 산악연맹을 필두로 경기도, 전북, 경북, 제주, 충북, 충남산악연맹이 차례로 가입하다.

1968년

대한산악연맹이 '국토종주3천리' 대장정을 시작하다. 최남단인 마라도에서 출발하여,1972년 향로봉에서 끝났다.

이는 산악인에 의한 최초의 백두 대간 종주로 기록되었다.

1969년

한국산악회가 해외원정등반 훈련으로 설악산에서 동계훈련을 실시하던 중 이희성 대장 등 10여명의 대원이 중음의계곡에서 눈사태로 사망하다.

한편, 최초의 산악잡지 <등산(지금의 '월간 山'의전신)>이 5월에 창간하다. 6월에 또 하나의 잡지 <산수>가 창간하였으나 불과 넉 달만에 문을닫았다.

이해에는 인수봉,선인봉에서 무려 10개의 등반 루트가 개척되었다.

중앙관상대는 국내최초로 관악산 정상에 기상 레이더를 설치하였다.

1970년

정부가 대한산악연맹의 협조를 얻어 전국 유명산에 인수산장, 권금성산장, 노고단산장 등 산장 및 대피소 35개를 건립하다.

1971년

대한산악연맹 원정대가 최초로 8,000m봉인 로체사르(8,400m)에 도전하다. 등정은 실패했으나, 최수남은 한국인 최초로 8,000m 선을 넘어선 산악인이 된다.

같은 무렵 전국합동대가 마나슬루(8,163m)에 도전한다. 김기섭이 등반 도중 추락사하므로 한국인 최초의 희말라야 조난자로 기록된다.

한국산악회에서는 최초로 8명을 프랑스 국립스키등산학교(ENSA)로 보내 40일간 교육을 받다. 이듬해에도 4명을 ENSA로 파견햐였다.

1972년

김정섭이 마나슬루에 재도전하였으나, 눈사태로 15명(대원5명,세르파10명)이 사망하다. 이 사고는 세계 희말라야 등반사에서,1937년 낭가파르밧에서의 독일팀 16명 사망에 이어 두 번째의 대형사고로 기록되었다.

1974년

한국등산학교(초대 교장 권효섭)가 상설등산학교로는 최초로 개교. 정규반, 암벽반, 동계반, 특별반으로 나누어 정기적인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대한산악연뱅은 에베레스트 원정 제1차 훈련을 지리산에서 실시한다.

1975년

대학산악연맹은 에베레스트에 1차 정찰대 7명을 현지로 파견하다. 이들은 정찰활동중 트레킹 피크인 아일랜드 피크(6.189m)의 주봉과 서봉을 전원 등정한다. 한국인이 히말라야 독립봉 등정은 이것이 처음이다.

구곡폭포(김재근), 설악산 형제폭(김호진 등)이 초등되어, 빙벽 등반에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하다.

1976년

에코 클라이밍 클럽의 유기수 등이 선인봉 남측 오버행 전 코스를 너트만을 사용하여 완등하다. 이로써 국내에서도. Clean Climbing의 열풍이 일기 시작한다.

1977년

한국 최초의 에베레스트 등정이 이루어지다. 김영도 대장이 이끄는 대한산악연맹 원정대는 한번의 실패를 딛고, 고상돈과 펨바 노르부 셰르파가 9월 15일 정상에 섰다. 이로써 한국은 세계에서 8번째 에베레스트 등정 국가가 되었고, 고상돈은 58번째 등정자가 되었다. 박상열과 앙 푸르바 셰르파는 8,700m의 고도에서의 비박 기록을 세웠고,이 최고 높이의 비박은 한동안 꺠어지지 않았다.

한편, 국내 최대의 빙폭인 토왕성 폭포의 상하단이 4박5일만에 크로니산악회의 박영배, 송병민에 의해 초등되다.

1978년

'자연보호헌장' 이 선포되다.

한국산악회 원정대(전병구 대장 외 5명)는 안나푸르나 4봉(7,525m)을 등정하고, 유동옥은 최초의 7,000m 급 등정자가 되었다.

한편, 대한산악연맹은 중앙일보와 합동으로 북극탐험대(대장 김영도)를 조직, 최초로 북극권에 도전한다. 대방원을 가로질러 북위 80도선에 도달하였다.

1979년

최초로 북아메리카주 최고봉 매킨리(6,194m)에 3개의 한국대(한국일보, 고령산악회, 고려대산악부)가 도전하여 모두 성공하지만, 선두의 한국일보대는 고상돈, 이일교가 하산시에 추락사한다.

또한,최초로 악우회가 유럽 알프스의 아이거(3,970m) 북벽에 도전하여 성공하다.

1980년

동국산악회의 마나슬루 원정대(대장 이인정)가 등정에 성공하다. 이는 단일 산악회가 8,000m 봉을 등정한 첫 기록이다.

요세미티에서는 이영식, 허정식, 강구영의 3명이 하프돔을, 재미교포 산악인 주영이 엘캐피탄을 최초로 등정하다.

1981년

서울문리대 OB산악회가 최초로 남아메리카 최고봉 아콩카구아(6,959m)에 도전하여 등정에 송공하나, 1명이 실종되었다.

악우회가 최초로 카라코람에 진출하다. 난이도 높은 바인타브락 2봉(6,960m)에 도전하지만 1명이 추락사한다. 악우회는 2년 후인 1983년에 재도전하여 유한규, 임덕용이 세계 최등정의 위업을 이루어낸다.

1982년

최초의 여성 원정대가 히말라야로 떠난다. 선경여자산악회는 람중히말(6,986m)을 등정하고, 기형회, 윤형옥은 산국인 최초의 여성 등정자로 기록된다.

부산학생산악연맹은 지방 팀으로는 최초로 히말라야에 도전하여, 가네쉬 4방(일병 파빌봉, 7,102m)을 등정하다.

곧이어 대전쟈일클럽은 고줌바캉(7,806m)에 도전, 김영한이 세계 초등정의 대기록을 수립힌다.

한편, 남선우는 푸모리 (7,145m)를 동계에 등정하는데, 이는 우리의 첫 동계 등정이다

1983년

포항향로산악회가 최초로 인도 캐시미르에 진출하여 눈(7,135m)에 등정하다.

허영호는 마나슬루를 대상으로 최초로 8,000m 급 단독 등정에 성공하다.

중앙대, 양정 합동대는 최초로 아마다블람(6,812m)의 동계 초등정을 이루어낸다.

1985년

울산의 합동대가 히말출리 북봉(7,371m)에 도전장을 내어, 이재홍이 세계 초등정의 위업을 달성하다.

남극관측탐험대(대장 홍석하)의 허욱, 허정식, 이찬영이 최초로 남극대륙의 최고봉인 빈슨 매시프(5,642m)를 등정하다. 토왕성 빙쪽에서는 전년도 이태식이 이루어낸 단독 등반 성공에 이어, 최초의 여성완등자(조희덕)가 나왔고, 대승폭빙폭을 윤대표, 정호진이 초등하다.

1987년

한국산악회의 합동대가 에베레스트를 동계에 도전하요, 허영호와 셰르파 1명이 등정에 성공하다.

한편,광운공고 OB산악회가 고줌바캉(7,806m)를 동계 초등정하고, 고교생 최미호(당시 17세)는 최연소 등정 기록을 세웠다.

1988년

대한산악연맹의 원정대가 에베레스트와 로체(8,516m)를 동시에 등정하다. 최초의 8,000m 급 연속 등정기록이고, 총 10명의 대원이 등정자 명단에 오르게 되었다.

경남산악연맹의 원정대는 난이도 높은 고산 등반을 추구하자는 일념으로 눕체 북서봉(7,745m)을 동계에 초등정하다.

울산의 합동대는 다울라기리 6봉(7,268m) 구르자히말(7,193m) 구스퉁 북봉(6,529m)을 연속등정한다.

최초의 여성대가 매킨리 등정에 성공하고, 검악산악회는 뉴질랜드의 마운트 쿸(3,754m)을 등정하다.

한편, 국내 최초의 인공암벽이 서울 사레바 지사에 설치되고, 청악산우회가 설악산 소승폭 빙폭을 초등하다.

1990년

처음 파미르의 최고봉 코뮤니즘(7,495m)을 등정하다. 이인정 대장이 이끄는 합동대의 5명이 정상에 오른다. 이어 한국산악회에서는 1명이 코뮤니즘에 등정하고, 2명이 코르제네프사카야(7,105m)의 정상에 올랐다.

한편, 전년도에 김운회, 조금석이 국사대폭을 초등한데 이어, 김용기, 이상록이 토왕성 빙폭은 하루에 세 번 오르는 기염을 토한다.

1991년

충북 서원대산아고히가 최초로 동 파미르에 진출하여, 무즈타그아타(7,546m)를 등정하고, 대한산악연맹에서는 최초로 티베트에 진출하여 시샤팡마(8,046m)를 등정한다.

토왕성 빙폭엣허는 여성(남난희,이현옥)으로만 파티를 이루어 등반에 성공한다

1992년

천산 산맥의 국제 캠프에 참여한 대구경북, 광주전남, 강릉대, 대구, 전주, 수원, 개인팀 등이 칸텡그리(7,010m)에 19명이 대거 등정하고, 이어서 2명이 포베다(7,439m) 등정을 성공한다.

1993년

대한산악연맹의 여성원정대가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하다. 지현옥, 최오순, 김순주는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첫 한국여성이 되었다.

히말라얀클럽의 허영호는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종주하고, 동국산악회의 박영석은 최초로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 기록을 세운다.

검악산악회는 최초로 남미 파타고니아의 피츠로이(3,441m)를 등정한다.

국내에서는 정승권이 토왕성 빙폭 단독 등반후 클라이밍 다운하는 기록을 세웠다.

1994년

경남산악연맹은 안나푸르나 남벽에 도전하여 박정현이 정상에 오른다. 이로써 히말라야 거벽 등반의 성공을 이루었다.

한편 토왕성 빙폭에서는 37분만에 상, 하단을 모두 완등한다.

1995년

경남산악연맹 원정대가 에베레스트 남서벽 등정에 성공하다. 조형규가 이끄는 이 팀은 김영태, 박정헌이 셰르파 2명과 함께 남서벽으로 정상에 오른다.

경기북부연맹에서 최초로 힌두쿠시로 진출하여, 최고봉인 트리치미르(7,708m)등정에 성공하나, 등정자 2명이 하산중에 실종하는 비극을 당한다.

김미선이 여성으로는 최초로 알프스의 그랑드조라스 북벽와 아이거 북벽을 오르고, 김점숙이 여성 최초로 토왕성 빙폭 단독 등반에 성공하다.

한편, 이인정이 최초로 상설 산악박물관을 개관하고, 이듬해에는 상설 산악도서관도 개관하였다.

1996년

대한산악연맹이 중국등산협회와 합동으로 충모강리(7,048m)와 룽보강리(7,095m)의 세계 초등정을 달성하다.

1997년

성대산악부는 초오유(8,201m)에 5명의 대원 전원이 등정하다. 성대산악부는 1991년에도 가셔브룸 2봉(8,035m)에 4명의 대원 전원 등정에 성공한 바 있다.

한국산악회는 가셔브롬 4봉(7,925m)의 서벽 중앙립으로 루트 초등을 기록하다.

1998년

세계적인 거벽으로 알려진 탈레이사가르(6,904m)의 최난관 구간인 상단의 불랙타워를 최승철, 김형진, 신상만이 세계 최초로 돌파하지만, 정상 설원에서 미끄러지며 추락사한다.

장애인 김홍빈이 아콩카구아와 매킨리를 등정하고, 12세의 김영식이 매킨리의 최연소 등정자가 되었다.

1999년

8,000m봉 4개를 등정한 대표적 여성 산악인 지현옥이 안나푸르나에서 하산 중 추락사하다.

한편, 손정준이 5.14급에 등극한 최초의 산악인이 된다. 손정주은 설악산 적벽을 자유 등반으로 완등하는 기록도 세운다

2000년

엄홍길이 8,000급 14봉을 모두 등정하여, 세계에서 8번째 완등자가 되었다. 1988년 에베레스트를 시작으로 12년만에 이루어낸 쾌거이다. 엄홍길은 외국의 일부 산악잡지에서 로체와 시샤팡마 등정의 의문을 제기하자, 이듬해에 곧바로 두 봉을 다시 등정하는 저력과 슬기로 이를 극복하였다.

K2에서는 3개 한국팀에서 총 14명이 등정하다.

대한산악연맹은 세계 7대륙 최고봉을 한해에 모두 등정하고, '새천년 7대륙의 정상' 이라는 등반기를 발표했다.

충북산악연맹과 울산산악연맹에서는 에베레스트와 로체를 모드 등정하다. 김환구(45세)는 국내 최고령 에베레스트 등정자가 되었다. 이로서 1977년부터 총 34명(여자 3명 포함)의 한국인이 세계 최고봉에 올랐다.

한편, 손상원과 고미영이 5.14 급 클라이머 대열에 합류한다. 고미영은 월드컵 여자부 랭킹 6위에 올라 세계적인 수준의 클라이머임을 입증하였다.

2001년

박영석이 8,000m 급 14봉을 모두 등정하여, 세계에서 9번째 완등자가 되었다. 1993년 에베레스트를 시작으로 8년만에 이루어낸 대기록이다.

◐◑ 세계의 등반사 ◐◑

년 도

주 요 내 용

1786년

샤모니의농부 자크발마(Jacques Balmar)와 의사인 미셀 가브리엘 빠가르(Michel Gabriel Paccard)가 알프스의 최고봉 몽블랑(Mont Blanc,4807m)을 초등정하다. 이들의 등반에 동기를 부여했던 제너바의 자연 과학자 오라스베네딕트 드 소르쉬(Horace Benedict de Saussure)도 그 이듬해 몽블랑에 오른다. 이 몽블랑 초등정으로부터 근대등산이 시작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1820년

에드 제임스(Ed James)와 그의동료들이 파이크스피크(Pikes Peak,4,310m)에 오르다. 록키산맥에서 이루어진 최고의고산등반으로 기록된다.

1829년

에마누엘 장군(General Emanuel)이 이끄는 러시아 과학자 원정대가 코카서스에 있는 유럽 대륙의 최고봉 엘브루즈(Elbrus, 5,642m)를 초등정한다. 지질학자인 렌즈(Lenz)와 쿠퍼(Kuppfer)는 정상을 200m 앞두고 돌아 섰지만, 체르케스크 출신의 킬라 하시로프(Killar Hashirov)가 정상 등정에 성공하였다.

1855년

제임스와 크리스토퍼 스마이드 형제(James and Christoper Smyth), 찰스 허드슨(Charles Hudson), 존 버벡(John Birbeck), 스티븐슨(E. J. Stevenson)이 가이드인 울리히 라우어너(Ulich Lauemer), 요한과 마티아스 줌타우그발트(Johana and Mattias Zumtaugwald)와 함께 몬테로자 최고봉인 두루프슈피체(Dufourspize, 4,638m)에 오르다.

1857년

세계 최초의 산악회인 알파인 클럽(The Alpine Club)이 런던에서 창립한다. 알파인 클럽은 세계 최고(最古)의 연감<The Alpine Joumal>을 1859년에 창간하여 오늘날까지 발행하고 있다. 이 연감의 첫 제호는 <Peaks Passes & Glaciers>였다. 이어서 오스트리아, 이태리, 스위스 등 유럽 국가에서 산악회가 탄생한다.

영국의 허드슨(Hudson) 등이 가이드 없이 몽블랑 등반에 성공한 첫 기록을 남겼다.

1865년

영국의 에드워드 웜퍼(Edward Whymper) 일행 7명(현지 가이드 3명 포함)이 알프스 4,000m 급의 최후 보루로 남아있던 마터호른 (4,478m)을 초등정하다. 하산 도중 4명이 추락사하여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비극적인 등반으로 기록된다. 이 등반으로 알프스의 황금 시대가 막을 내렸다.

1880년

에드워드 웜퍼가 남아메리카 안데스의 침보라소(6,272m) 에 오름으로써, 표고 4,000m 급의 알프스 등산 무대가 유럽 이외의 지역으로 뻗어 나가는 계기가 되었다.

1883년

영국인 그래함(W.W.Graham) 일행이 시킴 지역의 포크트 피그(6,204m)를 등정하다. dlfhTJ 히말라야 등반 시대가 개막한다.

1893년

콘웨이(Conway)일행이 등반을 목적으로 최초로 카라코람에 원정하여, 파이오니아 피크(Pioneer Peak, 6,893m)를 등정하다.

1895년

머메리(Alfred F. Mummery)가 낭가파르밧(Nanga Parbat, 8,126m) 등반을 시도하다가 실종되다. 이는 히말라야 등반사에 있어 8,000m 급의 첫 도전이고, 또한 최초의 희생으로 기록된다.

1897년

가이드인 마티아스 주르브리겐(Matthias Zubriggen) 이 남아프리카 대륙의 최고봉인 아콩카구아(Aconcagua, 6,959m)를 단독 등반하다.

1904년

구스타프 하슬러(Gustav Hasler)와 프리츠 아마터(Fritz Amatter) 가 두 번의 비박을 감행하며 핀스테라호른(Finsteraarhorn, 4,275m)의 북벽에 오르다.이로써 알프스의 북벽 시대가 개막된다.

1906년

워크맨(Workman) 부부가 인도 눈, 쿤 산군의 피날클 피그(6,932m)를 등정하다. 이로써 히말라야에서 최초로 여성 등정자가 배출되었다.

1907년

톰 롱스태프(Tom Longstaff)가 가이드인 알렉시스와 앙리 브로세렐(Alexis and Henri Brocherel), 현지의 곳 hvhxj 카비르(Kabir)와 함께 가르왈 히말라야에 있는 트리슐(Trisul, 7,120m)에 올라, 최초의 7,000m급 등정을 기록한다.

한편, 노르웨이의 루벤손 일행은 시킴 히말라야의 카브루(7,353m)의 등반을 시도하여

7,290m 까지 도달하였다.

1909년

이탈리아의 아부르찌(Abruzzi)가 이끄는 원정대가 K2에 도전하다. 360여 명의 로칼 포터가 동원된 히말라야 최초의 대규모 원정대이다.

한편, 다른 이탈리아 팀이 카라코람의 초롤리사(7,654m)의 7,498m 까지 진출하였다. 당시로

는 인류가 도달한 최고 높이였다.

1910년

피터 앤더슨(Peter Anderson), 윌리엄 테일러(William Taylor), 찰스 맥거너걸(Charles McGonagall)이 qrndkapflzk 대륙의 최고봉 매킨리(MaKinley) 의 북봉(6,187m)에 오르다. 이들은 세칭 '탐광자(探鑛者, sourdoughs),라고 불리던 알래스카의 금 채굴업자들이었는데., 당시로서는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하는 등반이였다.

1911년

귀도와 막스 메이어(Guido and Max Meyer)가 가이드인 안젤로(Angelo Dibona)와 함께 랄리데레반트(Lalidererwand)의 카르벤델(Karwendel) 북벽에 피톤을 박아 가며 루트를 내다. 알프스의 벽에 피톤이 사용된 것은 이것이 처음이다.

1913년

미국의 스터크(Hudson Stuck)와 카스턴스(Harry Karsterns)가 매킨리 주봉을(6,194m) 초등정하다.

1921년

영국 왕립지질학회의 에베레스트 위원회가 제 3의 극지로 불리는 에베레스트에 역사적인 도전의 첫걸음을 시작하다. 에베레스트(Everest, 8,848(8,850)m)는 '초로룽마(티베트)', '사가르마타(네팔)' 라는 현지 이름에도 불구하고, 1852년 영국이 세계 최고봉임을 밝혀 낸 것을 계기로 '에베레스트' 라고 명명하였다.

1924년

제3차 원정대가 에베레스트 정상을 향하던 중 8,578m의 고도에서 후퇴하였으나, 선두에 선 말로리(G. Mallory)와 어빈(A. Irvine)이 실종되다. 이 사건은 히말라야 등반사에서 가장 미스터리 한 등반으로 꼽힌다. 현재에 이들이 과연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했는가에 대해서는 어떠한 확실한 증거도 없다.

1928년

릭 마스가 이끄는 독일대 파미르 산군의 레닌 봉(Pik Lenin, 7,134m)을 초등정하다. 코뮤니즘 봉(Pik Communism, 7,495m)은 1933년에 아벨라코프(Abalakov)가 이끄는 소련대가 초등정한다.

1931년

에릭 쉽톤(Eric Shipton), 프랭크 스마이드(Frank Smythe), R.L.홀스워드(R.L. Holdsworth)와 셰르파 레와(Lewa)가 가르왈 히말라야의 카메트(Kamet 7,755m)까지 에 오르다. 당시까지 가장 높은 고도의 봉우리였다. 중요한 초등 기록에 셰르파가 포함된 첫 번째 경우기도 하다.

한편 알프스에서는 슈미드(Schmid)형제가 3대 북벽의 하나인 마터로흔 북벽을 오르다. 이대

크램폰 등 암, 빙벽용 등반 장비를 사용하였다.

1932년

국제산악연맹(UIAA)이 유렵 국가를 중심으로 프랑스 샤모니에서 창립하다. 한국에서는 한국산악회가 1969년, 대한산악연맹이 1970년에 가입하였다.

빌리 메르클(Willy Merkl)이 dlRM는 독일 · 미국 합동대가 낭가파르밧에 도전하여.전위봉

인 라키오트 피크(Rakhiot Peak, 7,074m)를 초등한다.

똑일의 벨첸바하(Willo Welzenbach)가 암벽 등반의 체계 (1∼6급)를 만들다

1935년

리카르도 카신(Ricardo Cassin)과 비로리오 라티(Vittorio Ratti)가 3일동안 50개의 피톤을 사용하면서 둘로미테의 치마 오베스트 디 라바레도(CIma Ovest Di Lavaedo) 북벽에 오르다. 당시로서는 최첨단의 도전적인 등반이었다.

1936년

미국, 영국 합동대의 노엘 오델(Noel Odell)꽈 빌 틸맨(Bill Tilman)이 난다 데비(Nanda Devi, 7,817m)에 오름으로써 인간이 오른 최고봉의 기록을 경신하다.

한편 일본은 아시아 국가로서는 처음으로 히말라야 원정대를 인도 가르왈 지역에 파견하여,

난다코트(Nanda Kot, 6,861m)를 초등정한다.

1937년

독일대의 제 3차 낭가파르밧 원정대가 눈사태로 16명(대원 7명, 고소 포터9명)이 조난 사망하다. 히말라야 등반사에 있어 최대의 조난 사고로 기록되었다.

독일대는 제2차(1934년) 원정에서도 빌리 메르클 대장을 포함하여 10명이 조난 사망하여, 이

후 낭가파르밧은 독일인 숙명의 산이 되었다.

1938년

알프스의 3대 북벽 가운데 아이거(Eiger 3,970m) 북벽이 안드를 헤크마이어(Anderl Heckmair), 루드빅 뵈르그(Ludwing Vorg)팀과 하인리히 하러(Heinrich Harrer), 프리츠 카스파레크(Fritz Kaspark) 팀의 합동 등반으로 개척되고, 그랑드조라스 북벽은 리카르도 카신, 우고 티조니(U해 Tizzoni), 지노 에스포지토(GIno Esposito)의 3인조에 의해 개척되었다.

1950년

프랑스의 모리스 에르조그(Maurice Herzog)과 루이 라슈날(Louis Lachenal)이 안나푸르나(Annapuma, 8,091m)를 오르다. 이는 히말라야에서의 자이언트 급인 8,000m봉 등정 시대의 개막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심각한 동상에 걸렸다.

노르웨이 원정대는 힌두쿠시 산맥의 최고봉 트리치미르(7,706m)를 초등정한다.

한편 앨런 스택(Allen Steck)과 존 살레테(John Salathe)가 오랜 노력 끝에 요세미티의 센티

널 록(Sentinel Rock)북벽을 오르다. 4일이 걸린 이 등반에는, 마지막 500m 에서는 150개의

피톤과 9개의 익스펜션 볼트가 사용되었다. 이 등반은 요세미티 최초의 '빅 월(Big Wall) 등

반' 으로 기록된다.

1953년

두 개의 8,000m 봉이 초등정되다. 존 헌트(John Hunt)가 이끄는 영국 원정대 소속의 뉴질랜드인 에드먼드 힐러리(Edumund Hillary)와 세르파인 텐징 노르게이(Tenzing Norgay)가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Everest, 8,848m)에 오르고, 독 · 오스트리아 합동대의 헤르만 불(Hermann Buhl)이 극한적인 단독 등반으로 낭가파르밧(Nanga Parbat, 8,126m)에 오르다.

한편, 피에르(B. Pierre) 대장의 프랑스대는 인도 캐시미르의 눈 (Nun Ser, 7,135m)을 초등

정하고, 이때 정자 중에서 고강(Kogan)은 여성 최초로 7,000m 급을 등정한 기록을 갖게 된

다.

1954년

아르디토 데지오(Ardito Desio)가 이끄는 이탈리아 원정대 소속의 아킬레 콩파뇨니(Achille Compagnoni)와 리노 라세델리(Lino Lacedelli)가 세계2위의 고봉 K2(8,611m)를 초등정하다. 카라코람의 8,000m 급 첫 등정이다.

오스트리아 원정대는 초오유(Chooyu, 8,201m)를 초등정하는데, 히말라야 등반사에서 최초로

가을(포스트 몬슨 : Post Monsoon)철에 성공한 등정이다.

한편, 뤼시앙 베라르디니(Lucien Beradini), 로베르 파라고(Robert Paragot), 에드몽 드니

(Edmond Denis), 아드리앙 다고리(Adrien Dagory), 귀 풀레(Guy Poulet), 피에르 르쉬에르

(Pierre Lesueur)가 아콩카구아의 거대한 남벽을 오르다

1955년

발터 보나티(Walter Bonatti)가 2년전 마터호른 푸르겐(Furggen)의 동계 직등 성공에 이어. 5일만에 알프스의 난백민 프티 드류(Petit Dru)의 남서 필라를 단독으로 오르는 쾌거를 이룩하다.

세계 3위 봉인 캉첸중가(Kangchenjunga, 8,586m)와 5위 봉인 마칼루(Makalu, 8,463m)를 영

국과 프랑스 원정대가 각각 초등정하다

1956년

스위스 원정대가 로체(Lhotse, 8,516m)를 초등정하고, 곧이어 3일 후에 에베레스트의 제 2등을 성공함으로써, 8,000m 급에서의 연속 등정을 이룬 최초의 원정대가 되었다.

마나슬루(Manaslu, 8,163m)와 가셔브룸 2봉(Gasherburm 2 , 8,035m)을 일본과 오스트리아

의 원정대가 초등정하다.

1957년

슈무크(M. Schmuck) 대장의 오스트리아 원정대가 브로드 피크(Broad Peak, 8,047m)를 초등정하다. 대장을 포함하여 헤르만 불, 쿠르트 디임베르거(Kurt Diemberger), 빈터스텔러(F. Wintersteller) 등 4명 전원이 등정해 성공하다. 산소 없이, 고소 포터 없이 세 개의 고소 캠프만을 설치한 8,000m 급에서 이루어진 최초 알파인 스타일의 등반이다. 이들은 BC로 하산한 후, 2명씩 조를 나눠 곧바로 주위의 7,000m급 산들의 등반에 도전한다. 헤르만 불은 이때 초콜라사의 정상 능선 부근에서 등산을 포기하고, 하산 중에 눈처마의 붕괴로 사망하다.

1958년

미국의 워렌 하딩(Warren Harding), 조지 휘트모어(George Whitemore), 웨인 메리(Watne Merry), 앨런 스텍 등이 요세 미티의 엘 캐피탄(El Capitan)에 최초로 고난도 루트인 노즈(Nose)를 개척하다. 18개월에 걸친 도전이었고, 45일만에 이루어 낸 등반이다. 675개의 피톤과 125개의 볼트가 사용되었다.

미국 등반대는 가셔브룸 1봉(일면 히든파트 8,068m)을 초등정하다.

19561년

토니 히벨러(Tony Hiebeler), 발터 알름베르거(Walter Almberger), 토니 킨스호퍼(Toni Kinshofer), 안데를 만하르트(Anderl Mannhardt)가 3월 6일부터 12일에 걸쳐 아이거 북벽을 동계 초등하다.

1962년

네팔 힘라라야의 자누(Jannu, 7,710m)가 등정됨으로써 '높지는 않지만 보다 어려운(Less lofty but highly difficult)' 봉우리를 추구하려는 히말라야 등반의 새로운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하다

1964년

1960년 스위스대가 다울라기리(Dhaulagiri, 8,167m)를 초등정하였고, 마지막 남은 8,000m 급인 시샤팡마(Shishapangma, 8,046m)를 중국대가 초등정하다

1965년

발터 보나티가 마터호른 북벽을 동계에 단독. 직등으로 오르는 위업을 달성하다. 마터호른이 초등된지 꼭 100년 만의 일이다.

보나티는 코시모 자펠리(Cosimo Zapelli)와 2년 전인 1963년에 그랑드조라스의 워커 스퍼를

동계 초등한 바 있다.

1967년

스위스의 실벨 소당(Sylvain Saudan) 이 평균 경사도가 51도에 이르는 에귀 드 블레티에르(Aiguille de blaitiere)의 스펜서 끌르아르(Spencer Couloir)를 스키로 하강하다. 알프스에서 이루어지는 '극한 스키(extreme skiing)' 의 시초로 기록되었다.

1970년

크리스 보닝텅(Chris Bonington)이 이끄는 영국 원정대가 안나푸르나의 남벽을 초등하다. 이는 8,000m 급 산에서 이루어진 최초의 거벽 등반이다. 이로써 히말라야 거벽 등반시대가 개막되었다.

곧이어 독일대는 낭가파르밧 남릉 중앙 벽인 루팔 벽을 초등하였다. 이떄 메스너(Messner)

형제는 정상에서 서벽인 디아미르로 하강하다가 동생이 추락사한다.

1973년

아드레이 자바다(Andrzej Zawada)가 이끄는 폴란드 원정대가 동계에 힌두쿠시의 노사크(Noshaq, 7,492m)를 등정, 희말라야 등반사에 있어 최초의 동계등정을 기록했다.

1975년

라인홀트 메스너(Reinhold Messner) 와 페터 하벨러(Peter Habeler)가 일명 히든 피크(Hidden Peak)라고 불리는 가셔브 룸 1봉(Gasherbrum 1, 8,068m)의 새로운 루트를 순수한 '알파인 스타일'로 올라 히말라야 등반의 새 시대를 열었다.

일본 여성대가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하고, 다베이준꼬는 최초의 에베레스트 여성 등정자

가 되었다. 또한 보닝턴이 이끄는 영국대는 에베레스트 남서벽을 초등한다.

1978년

라인홀트 메스너와 페터 하벨러가 최초로 산소 없이 에베레스트에 오르다. 메스너는 3개월 뒤에 낭가파르밧을 단독 등반 함으로, 최초의 8,000m 무산소, 단독, 연속 등정의 기록을 세웠다.

1980년

안드레이 자바다가 이끄는 폴란드 원정대가 에베레스트 동계에 등정하다. 이는 8,000m 급 최초의 동계 등반이다. 메스너는 북동릉을 통하여 산소 없이 에베레스트를 단독으로 등정하다.

1983년

세계 도처에서 새로운 자유 등반의 바람이 불다. 스위스의 마르코 페드리니(Marco Pedrini)는 드류의 수퍼다이렉트(Superdirect)를, 프랑스의 에릭 에스카피에는 푸(Fou)의 남벽을 자유 등반하다.

1984년

메스너와 카머란더(Hans Kammerlander)는 8,000m 봉인 가셔브룸 1,2 봉을 미리 중간 데포(Depot) 나 B.C를 경유하지 않은 채 연속 등반으로 성공한다

1985년

미국인 딕 베스(Dick Bass)는 세계최초로 7대륙의 최고봉을 모두 등정하다. 오스트레일리아 최고의 대륙의 최고봉 코시어스로(Kosciusszko, 2,228m)를 오세아니아 대륙의 최고봉인 칼스텐츠(Carstenz, 4,884m)로 변경할 경우에는 1986년에 카나다의 펫 모로우(Pat Morrow)가 최초로 기록된다.

1986년

라인홀트 메스너가 로체를 오름으로써 인류 최초로 8,000m 급 14봉을 완등한다. 1970년 낭가파르밧을 시작으로 16년만에 이루어 낸 대기록이다.

소련 원정대는 파미르의 코뮤니즘 붕과 코르즈네프스카야 봉을 동계에 초등정하다.

한편 K2에서는 13명이 산악인이 사망하는 비운이 있었으나, 최초의 부부 등정자가 배출되

고, 프랑스의 버느와 샤무는 24시간만에 K2를 오르는 기록을 수립힌다.

1987년

폴란드의 예진 쿠쿠츠카(Jerzy Kukuczka)가 시샤팡마를 끝으로 사상 두 번째로 8,000m 14봉을 완등하다. 1979년 로체를 시작으로 8년만에 이루어졌다.

1988년

일본, 중국, 네팔 합동대가 에베레스트를 남북 교차 종주하며, 사상 최초로 최고봉 정상에서 TV생중계를 성공하다. 역대 최대 규모의 에베레스트 원정대다.

에베레스트에서는 이밖에 여려 기록이 나왔는데, 프랑스의 부와벵은 정상에서 낙하산으로

활공 하강하고, 바타르는 22시간 30분 만에 무산소 등정을 성공한다. 또 4명의 체코슬로바키

아 원정대는 남서벽을 알파인 스타일로 모두 등정하지만, 하산 중에 전원 사망하였다.

1991년

항가리의 데카니(Peter Dekany)와 오스베스(Attila Ozsvath)가 가르왈 히말라야의 난봉 탈레이사가르(ThalaySagar, 6,904m) 북벽을 오르다

1992년

여성으로서는 사상 처음 8,000m 급 8개 봉을 등정한 폴란드의 반다 루트키에비츠(Wanda Rutkiewicz)가 9번쨰 봉인 캉첸중가를 등반 중 실종되다.

1993년

에베레스트 초등정 40주년의 해로 27개국에서 129명이 에베레스트를 등정하고, 5월 10일 하루에만 40명일 오르는 진기록을 세우다.

미국의 여성 클라이버 린 힐(Lyn Hill)이 엘 캐피탄의 노즈를 자유 등반으로 오르다. 세계

최강의 남성 클라이머들도 해내지 못한 일이였다.

1994년

노르웨이의 얼링 카케가 에베레스트를 등정함으로써, 남극 , 북극과 함께 3극점에 도달한 최초의 인간이 되다.

아시안 산악인들의 오랜 소망이던 아시아산악연맹(UAAA)이 창립하여, 창립 총회를 서울에

서 개최하다.

1995년

영국의 앨리슨 하그리브스(Alison Hargreaves)가 여성 최초로 산소 없이 에베레스트에 오르다(그녀는 이어서 K2도 연속 등정하지만, 하산 중에 실종되었다.)

스위스의 에라르 로레탕(Erhard Loretan)은 세 번째 8,000m 봉 완등자가 된다. 프랑스의 버

느와 샤누는 마칼루를 올라 8,000m 봉 13개봉을 등정하였으나, 마지막 봉인 캉첸중가에서

등반 중에 실종되었다.

슬로베니아의 2인조 등반대가 안나푸르나 정상에서 스키 활강에 성공하다.

1996년

멕시코의 카를로스 카르솔리오(Carlos Carsolio)와 폴란드의 크리스토프 비엘리츠키(Kyzysztof Wielicki)가 8,000m 봉 완등자 대열에 합류하고, 앙 리타 셰르파는 에베레스트를 무산소로 10회 등정하는 기록을 수립힌다.

미국의 맹인인 에릭 바이헨마이어가 정상인 산악인 3명과 함RP 2박 3일만에 요세미티의 엘

캡 노즈를 완등하다.

북극권 그린랜드 섬의 피요르다 지역이 거벽 등반의 새로운 대상지로 부각되다.

2000년

밀러니엄의 해를 맞이하여, 에베레스트에서는 봄에만 무려 130명의 등정자가 배출된다. 바부 치리(Babu Chiri) 셰르파는 에베레스트를 16시간 56분만에 단독 등정에 성공하여 최단 시간 등정을 갱신하다. 바부 치리는 전년도에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무산소로 21시간 30분을 체류한 진기록을 수립했다.

슬로베니아의 다보 카르니카는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BC까지 단 한번의 스키 탈부착과 휴식

도 없이 완벽한 스키 활강을 시도하여 성공하다. 2년 전인 1998년에는 한스 카멀란더가 티

벳 쪽으로 스키 활강을 성공한바 있다.

한편, 이태리의 세르지오 마르티니(Sergio Martini)는 스페인의 화니또 오이아르지발(Juanito

Oiarzabal)에 이어 7번째로 8,000m 봉 완등자가 된다.

독일의 토마스와 알렉스 후버 형제는 비아포의 바인타브락(7,285m)에 신 루트를 개척하고,

이어 가르왈의 시블링에서도 새 루트를 개척하는 등 난이도 높은 거벽 등반의 새 장을 열어

나가고 있다.

2001년

에베레스트에서는 맹인 바이헨마이어, 장애자 핀딕 텅크가 등정에 성공하고, 64세의 고령인 셔만 불이 아들과 함께 최초의 부자 동시 등정을 기록한다. 마르코 시후레디는 정상에서 스노보더로 활강한 최초의 산악인이 되었다.

엘캡의 코라존, 뮤어월 등 전세계에서 자유 등반인 활발히 전개되다.

2002년

UN 이 지구 환경보전 차원에서 정한 '세계 산의 해'를 맞이하여, 전 세계의 산악지대에서 산악인들이 산악 환경 정화와 보전 캠페인에 앞장서다

    ◐◑ 8000M 급 초 등정사 ◐◑

    ◐ 세계의 초등정사 ◑

NO

산이름

높이(M)

초등정국가

초등년도

1

에베레스트

8848

(8850)

영국

1953

2

K2

8611

이태리

1954

3

캉첸충가

8586

영국

1955

4

로 체

8516

스위스

1956

5

마칼루

8463

프랑스

1955

6

초오유

8021

오스트리아

1954

7

다울라기리Ⅰ

8167

스위스

1960

8

마나슬루

8163

일본

1956

9

낭가파르밧

8126

독일

1953

10

안나프르나Ⅰ

8091

프랑스

1950

11

가셔브롬Ⅰ

8068

미국

1958

12

브로드피크

8047

오스트리아

1957

13

시샤팡마

8046

중국

1954

14

가셔브롬Ⅱ

8035

오스트리아

1956

    ◐ 한국의 초등정사 ◑

NO

산이름

높이(M)

한국의초등정

초등 년도

대장

등정자

1

에베레스트

8848

(8850)

대한산악연맹

1977

김영도

고상돈,셰르파1명

2

K2

8611

대한산악연맹

1986

김병준

장봉완,김창선,장병호

3

캉첸충가

8586

동국산악회

1999

박영석

박영석,셰르파2명

4

로 체

8516

대한산악연맹

1988

최창민

정호진,임형칠,박쾌돈, 박희동

5

마칼루

8463

한국산악회

1982

함탁영

허영호,셰르파2명

6

초오유

8021

울산합동대

1992

김관준

남선우,김영태,셰르파2명

7

다울라기리Ⅰ

8167

부산합동대

1988

조정술

최태식,셰르파2명

8

마나슬루

8163

동국산악회

1980

이인정

서동완,셰르파2명

9

낭가파르밧

8126

경남산악연맹

1992

조형규

박희택,송재득

광주우암산악회

박찬기

김주현

10

안나프르나Ⅰ

8091

경남산악연맹

1994

박주환

박정헌,셰르파4명

11

가셔브롬Ⅰ

8068

대전,충남산악연맹

1990

윤건중

박혁상

12

브로드피크

8047

한국/스페인

1995

엄홍길,스페인4명

광주,전남산악연맹

위계룡

박신영,이정현

박현재(하산중추락사)

13

시샤팡마

8046

대한산악연맹

1991

김명수

김창선,김재수

14

가셔브롬Ⅱ

8035

성대산악회

1991

한상국

한상국,김창선

김수홍,유석재

울산시산악연맹

송정두

이용순,한영준,장상기

조재철,박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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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벽 등반이란?  +   [자료실]   |  2006. 9. 13. 16:23

자료 출처ㅡ신구 대학 산악부.

암벽등반이란?

사람들은 암벽등반이 적군의 요새를 기습하는 게릴라처럼 갈고리를 매단 로프를 던져 잡고 오르는 것쯤으로 이해하기 십상이다.
등산사적으로는 그런 식으로 오르는 방법이 주로 행해지던 시대가 있었지만 오늘날의 현대 등반은 줄을 잡고 오르는 '게릴라식' 등반을 거의 수반하지 않는다. 또한 성공 아니면 죽음의 선택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산에서 사고를 당한 사람은 무수히 많다.
그러나 단순히 암벽등반의 실패에 기인한 사고는 매우 드물다. 산에서 일어난 사고는 대개 자연이란 거대한 힘에 부딪쳐 어쩔 수 없는 경우이거나 자만심과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 대부분이다.
더욱이 최근 스포츠란 단어를 받아들인 '스포츠 클라이밍'은 자연환경과 기후에 노출된 전통적인 알파인 클라이밍에 비하면 스포츠의 '놀이적' 특징이 한결 두드러져 즐겁기까지 한다.

클라이머가 평지가 아닌 수직의 바위에서도 이처럼 즐겁고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로프 몇 가지 쇠붙이들에 의한 미더운 안전 장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그물을 드리워 '안전'을 확보한 다음 공중 3회전 따위의 '모험'을 시도하는 곡마단의 공중곡예와 다를 바 없는 계산된 모험이다.
암벽등반의 경우는 로프와 카라비너 등의 장비가 곡마단의 그물을 대신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러한 장비들이 등반을 대신해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장비를 다루는 방법은 퍽 간단해서 누구든지 쉽게 익힐 수 있는 반면, 바위를 오르는 기술은 너무도 복합적이고 가변적이다.
본능적인 오름짓 이외에도 주도면밀한 손, 발기술을 필요로 하며 추락의 공포를 이겨내는 강담, 정확한 판단력과 심지어는 육감까지도 요구한다.

결론적으로 장비는 안전한 등반의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필요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노련한 클라이머들은 습관적으로 추락에 대비한 장비를 설치하며 등반하지만 자신의 등반능력 이상으로 장비에 기대를 걸지 않는다.
아무리 숙달된 스카이다이버도 점프할 때는 별도의 예비 낙하산을 휴대하게 마련이다. 암벽등반을 거기에 비교하자면 주낙하산이 등반능력이며 예비낙하산은 장비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안전하다는 것이 곧 쉽다는 의미는 아니다.
암벽등반에 일반적인 스포츠를 초월하는 그 '무엇'이 있음은 하다 못해 단 한번 남에게 이끌려 올라간 경험만을 가진 사람에 의해서도 종종 확인된다. 사실 암벽등반이 우리에게 남겨주는 것은 이루 형언할 수 없다.
실패의 쓰라림을 느껴야 할 때가 있는가 하면 수고한 자의 몫처럼 뿌듯한 성취감을 만끽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성취 하려는 노력으로부터 이미 기쁨이 시작되는 것이 등산철학이다. 시작부터 기쁨이 있을진대 암벽등반은 진정 도전해 볼 만한 스포츠이다.

암벽등반은 암벽 표면에 나있는 틈새나 돌기 등을 손으로 잡고 발로 디디며 오르는 것이다. 오른다는 것은 추락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또한 추락은 암벽등반에서 항상 예 상되는 것이기 때문에 추락 정도에 따라서는 부상을 입을 수 있고 심한 경우에는 사망할 수도 있다.
아무런 장비도 걸치지 않고 수백 미터의 암벽을 기어오른다면 그것은 상당한 모험이다. 숙련자가 아닌 이상에야 엄두도 못 낼 일이고, 만에 하나 추락했을 경우 땅바닥까지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암벽을 혼자 오른다는 것은 특수한 경우이고 우리가 말하는 암벽등반은 대개 두 사람 이상이 등반하며 한 사람이 오를 때 다른 한 사람은 로프와 확보물로 등반자의 추락거리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일반적으로 선등자(앞서 오르는 사람)는 자신의 안전벨트에 로프를 묶고 이미 개척된 루트를 따라 오른다. 그 루트는 개척자가 위험요소마다 볼트나 하켄 등의 고정 확보물을 설치해 놓았지만 크랙일 경우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 너트나 프렌드 등의 유동확보물을 자신이 설치하며 올라야 한다.

선등자가 추락했을 때에는 확보자가 로프를 자신의 확보기로 제동시켜 선등자의 추락 거리를 최대한 줄이는 것이다 선등자의 등반거리는 사용하는 로프 길이에 따라 약 40미터 안팎에서 미치게 된다. 이것을 한 피치라고 하는데 매 피치마다 선등자나 후등자가 상호 확보를 받으며 오르는 것이다.

암벽등반은 암벽만을 손으로 잡고 발로 딛고 오르며 추락거리를 줄이기 위해 확보물을 설치하지만 아주 어려운 부분에서는 확보물을 손으로 잡고 오를 수도 있다. 전자는 자유등반에 속하고 후자는 인공등반에 속하는데 이제는 그 등반방식이 완연히 구분돼 행해지고 있다.
인공등반은 거벽을 오르는 등반 기술로 변화되었고, 자유등반은 스포츠적인 기술로 변화 되었다

장비 사용법

로 프

로프(Rope, 독:Sile)는 산악인의믿음과 안전의 상징이다.

로프는 등반자의 추락을 잡아 주거나 하강할 때 주로 사용된다. 로프는 굵기와 길이에 따라 그 사용범위가 다른데, 대체로 굵기는 10 - 11밀리미터 사이에, 길이는 55미터 60미터 짜리 로프를 사용하는 것이 적당하다.
굵기는 안전도의 문제이고 길이는 등반성의 문제인데,안전 범위에 든 로프를 사용해야 한다.
이 안전 범위에는 드는 로프는 제품 안내서에 U.I.A.A(국제산악 연맹)의 마크가 인쇄되어있다. 이런 제품은 여러 가지의 실험을 거쳐 공인된 것이다.
로프에는 늘어나는 것과 늘어나지 않는 2종류가 있다.

일반적인 등반용에는 늘어나는 로프를 사용해야 한다. '다이나믹' 로프라고 하는 이 늘어나는 로프는 그 늘어나는 특성 때문에 충격을 흡수하게 되어 추락자를 안전하게 한다.
늘어나지 않는 '스태틱' 로프는 등반용 보다는 등반 보조용 정도로 사용하게 되는데, 등강기와 같은 등반기구를 사용할 때 주로 이용된다. 이밖에 방수용 로프가 있으나 겨울등반이나 습한 지대등 등반 환경에 따라 선택해야 할 부분이다.
로프의 수명도 사용기간과 방법에 따라 다르겠지만 경사가 완만한 곳에서 할 때보다 경사가 급한 곳, 다시 말해 자유낙하가 일어나는 등반에서는 로프를 자주 교체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이유는 로프에 받는 충격이 자주 일어나면 로프의 인장강도가 약해지기 때문 이다.

로프를 교체하려 해도 사용 기간이나 사용 횟수를 정확히 기억하는 것은 실로 어렵다.
새 로프는 대체로 부드러운데 반해 많이 사용하다 보면 매듭을 질 때에 뻣뻣해진다. 또는 색깔이 많이 변색되었을 때, 외피가 파열되었거나 부푸러기가 많이 일어난 경우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로프는 사용한 후에 잘 사려놓아만 다음 사용할 때에 꼬임 없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고, 보관 할 때에는 대도록 직사광선을 받는 곳은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암 벽 화

암벽화는 암벽의 상태에 따라 기능이 서로 다른 암벽화를 몇 켤레 준비하면 그 선택 여하에 따라서 자신의 암벽등반 실력이 좀더 향상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예를 들어 슬랩등반처럼 마찰력이 주된 목적이라면 부드러운 암벽화가 좋다. 물론 부드러운 암벽화도 발에 너무 꼭 맞게 신으면 슬랩등반에서는 어색해진다. 그렇다고 운동화처럼 크게 신어서도 안된다.
맨발이나 혹은 얇은 양말 한 켤레를 신고 발가락이 펴진 상태에서 꼭 맞는 것이면 좋다. 수직벽이나 약간 오버행인 페이스에서는 홀드의 모양에 따라 선택한다. 홀드의 돌기가 손끝 정도만 걸리는 각진 것에서는 뻣뻣한 암벽화가 좋으며, 발에 꼭 맞게 신어야 한다.
심지어 어려운 난이도를 가진 루트라면 발가락이 조금 굽어질 정도이어야 한다.
또한 부드러운 암벽화일지라도 발가락이 약간 굽어질 정도로 꼭 맞게 신으면 이런 작은 돌기의 홀드에서도 뻣뻣한 것보다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 그 이유는 뻣뻣한 것은 아무래도 발끝의 촉감이 부드러운 것보다 떨어지기 때문인데 쉬운 루트보다는 어려운 루트에서 암벽화의 발끝 촉감의 중요성을 느끼게 된다.
이처럼 어떤 암벽화이던 발에 잘 혹은 꼭 맞게 신어야 한다.

안 전 벨 트

안전벨트는 추락하는 등반자의 몸에 전해오는 충격을 분산시켜 부상을 막기 위한 장비인데, 허리와 양쪽 다리의 허벅지를 잡아주는 넓은 패드의 띠로 된 '싯 하네스' 식이 일반적이다.

액세서리가 많이 붙어 있지 않고, 조작이 간단한 것이 당일 등반용으로 적당하다.

하 강 기

암벽등반을 마치고 암벽을 내려서야 할 때는 항시 로프에 하강기를 걸어 암벽을 내려서는 하강법을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하강법을 이용하지 않고 '다운 클라이밍'을 할 수 있지만 능숙한 등반 능력이 아니면 어려운 일이라 초보자에게는 안될 하강 방식이다.
하강기는 8자, 튜브, 플레이트가 주로 사용되며, 이런 장비들은 확보기의 기능도 함께 가지고 있다. 튜브나, 플레이트는 오히려 하강기보다는 확보기로써의 범위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이 밖에 카라비나를 이용한 '뮌터히치' 매듭 방식과 브레이크바 식의 하강방법이 있다



확 보 물

확보물이란, 암벽등반에 위험요소이며, 그로 인한 등반에 대한 매력을 갖게 하는 추락에 대한 대비책으로 등반자가 등반을 해나가며 적당한 거리마다 지지 점을 만들어 로프를 연결시키게 된다.

즉 바위에 로프를 고정시키는 역할이 이 확보물인 것이다. 그로 인하여 추락하는 등반자가 정지하게 된다.
일반적인 확보물로는 캠, 너트, 피톤, 볼트등이 있으며, 적당한 바위 틈새가 없는 매끈한 바위면에는 구멍을 내어 박는 볼트가 최후의 확보 수단으로 사용되는 확보물이다.
추락에 대비한 추락했을 때 제동시키는 일종의지지점이다.


카 라 비 나

카라비나는 여러 가지 장비를 서로 연결해주는데 그 역할이 있는데, 개폐구가 있어 연결과 해체를 편리하게 해주는 특징이 있다.

개폐구에 잠금 장치가 되어있는 안전한 카라비나도 있다.

웨 빙

흔히 슬링이라고 하는 웨빙은 일종의 잡끈인데, 그 사용범위가 폭넓다.
예를 들어 로프의 꺽임을 해결해주거나, 확보물을 서로 연결할 때, 즉 여러 개의 유동 확보물에 하중이 균등하게 걸리게 할 때 이 웨빙이 필요하게 된다.
이 밖에 암각이나 나무에 사용하여 좋은 확보지점을 만들 수 있게 된다.

퀵 드 로 우

이 장비는 카라비나와 카라비나 사이에 작은 웨빙이 걸려 있어 로프의 설치와 흐름을 용이하게 한다.

초 크

초크는 요즘에 이르러 암벽등반의 주요 장비가 돼 버렸다. 이것은 땀으로 인한 손의 미끄럼을 방지해 주는 것인데 쉬운 루트보다는 어려운 루트에서 그 효력을 발휘한다.
초크는 탄산 마그네슘 가루인데 손에 묻혀 줌으로써 바위 감촉에서 얻는 손의 마찰력이 좋아져 팔 힘을 절약시켜줄 수 있다. 이 가루를 작은 주머니 속에 담아 쓰는데 이것을 초크백이라고 부른다.
초크는 현대 암벽등반이 주요장비로 굳어졌다. 손의 땀으로 인한 미끄러짐을 방지하며 손의 마찰력을 증대시켜주는 역할을한다.

매 듭 법

매듭이란 무엇을 서로 연결해주는데 그 원칙이 있다. 암벽등반에서 매듭은 많이 사용되는 각종 장비들이 서로 연결되어지고 다시 해체되는 과정에서 그 편리성을 갖게 된다. 암벽등반의 주요 장비 중에 하나인 로프에서부터 매듭이 필요하게 된다.
암벽등반은 추락이 항상 예상되는 것이고, 그 추락의 대비책으로 사용되는 로프는 결국 매듭으로 등반자와 등반자 그리고 확보기와 확보물에 서로 연결되어 등반자가 추락이라는 가장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여러 가지 매듭법 중에 정작 암벽등반에서 필요한 매듭을 알아보자.

링 매듭

이 매듭은 납작한 웨빙을 서로 연결할 때 주로 쓰인다.
특히 자주 풀었다 묶었다 하지 않는 가는 자일이라면 이 매듭으로 연결해도 무방하다.
매듭을 짓기가 쉽고 작기 때문이다.


이중 피셔맨 매듭


주자일이나 가는 자일에 주로 쓰이는 이 매듭은 매우 안전한 매듭이지만 충격을 받은 후에는 다시 풀기가 매우 어렵다.
가는 자일처럼 매듭을 자주 풀지 않을 경우에는 좋지만, 주자일처럼 매듭을 수시로 묶었다 풀었다 할 때에는 효과적이지 못하다.




8자 매듭

가장 폭넓게 이용되는 이 매듭은 특히 주자일을 묶는 방법으로 자주 쓰인다. 자일을 안전 벨트에 연결할 때나, 두 개의 자일을 서로 연결할 때, 또는 고리를 만들어 카라비나를 사용 할 때 가장 적합하고 안전한 매듭이다.
8자 매듭은 등반중에 풀릴 염려가 거의 없고, 충격을 받은 후에도 쉽게 풀 수 있어 유리하다.
8자 매듭은 세 가지 종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고리형, 걸기형, 연결형이 그것이다.

(고리 형 8자 매듭)

8자 매듭중에 가장 빨리 묶을 수 있는 것인데, 자일에 고리를 만들어 카라비나에 걸 때 주로 사용된다.


( 걸기 형 8자 매듭)

카라비나를 이용하지 않고 로프를 안전벨트에 직접 연결할 때 주로 사용된다.
자일의 끝을 사용하는 선등자나 후등자 또는 중간 등반자도 이 매듭으로 자일을 자신의 안전벨트에 연결시키는 것이 편리하고 안전하다.

(연결 형 8자 매듭)

이 방법은 자일을 서로 연결할 때 주로 사용된다. 하강할 때에는 자일을 서오 연결할 경우가 생긴다.
이 때 사람의 무게로 인해 매듭이 조여들어 하강을 마친 후 매듭을 풀기가 매우 힘들어진다.
특히 피셔맨 매듭이 그 중의 하나이다. 이 때는 c형 8자매듭을 사용하면 한결 수월하고 또한 안전하다.



까베스똥 매듭

암벽등반 중에는 종종 확보줄을 사용하여 자신의 확보를 하게된다. 그러나 이 확보즐로 인해 오히려 거추장스러울 때가 많다. 확보줄이 거치적거려 등반에 불편을 줄 때가 많기 때문이다.
자신의 안전벨트에 연결된 주자일을 이용하면 확보줄을 따로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이때 까베스똥 매듭을 사용하면 매우 편리하다.

보울라인 매듭

산행 중에 나타난 간단한 암벽지대를 통과할 때 자일을 사용하게 된다면 보울라인 매듭으로 사용하면 된다.
그러나 이 보울라인 매듭은 하중이 항상 걸려있지 않으면 위험하다.
다시 말해 흔들림으로 인해 매듭이 풀려질 수 가 있다. 그래서 변형시킨 보울라인 매듭을 사용하는 것이 보다 안전하다.
이 매듭은 고리를 쉽게 조절할 수 있고, 매듭이 조여들지 않으며, 빠르게 몸에 묶을 수 있다.
그래서 안전벨트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짧고 쉬운 암벽지대를 지날 때 사용하면 편리 하다.

프루지크 매듭

이 매듭은 하중이 걸릴수록 조여들게 되어, 고정된 자일을 이용하여 올라갈 때나, 혹은 하강 할 때에 보조 안전장치로 사용할 수 있는 매듭이다.
고정되어진 자일 굵기의 반정도 되는 굵기의 둥그런 슬링을 사용해야 조임의 기능이 좋아지게 된다.

확 보

확보는 등반자의 추락을 정지시키기 위한 선등자 확보와 후등자 확보가 있고, 등반자 자신을 위한 자기 확보가 있으며, 그 확보 방법으로는 몸으로 충격을 흡수하는 직접확보와 확보물에 충격을 흡수시키는 간접확보 두 가지가 있다.
확보는 간단하면서 매우 중요하다.
선등자 확보와 후등자 확보는 확보자의 기술과 능력에 따라 등반을 또는 추락하는 등반자를 위험에서 보호할 수 있는 반면, 반대로 더 큰 위험에 빠트리게 할 수 있다.

선등자 확보

8자 하강기, 듀브, 그리그리 등의 확보기구를 사용하는 직접 확보 이여야 한다. 확보자의 안전벨트에 확보기를 걸어서 확보자세를 취하는 이 직접확보는 등반자가 이끄는 로프의 흐름을 좋게 해줄뿐더러 제동을 손쉽게 할 수 있고, 추락 하중으로 인한 충격을 흡수해 줄 수 있어 매우 안정된 확보이다.
확보 중에는 등반자가 등반하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알맞게 로프를 풀어주어야 한다.
로프가 확보기에서 많이 빠져나가 너무 느슨해있거나 반대로 팽팽하게 되어 있지 않도록 해야하고 등반자를 주의 깊게 주시해야 한다.

후등자 확보

선등자 확보와 같은 방법으로 확보를 한다. 단 이때는 로프를 당기게 되는데, 이런 직접확보에 의한 방법은 때에 따라서 매우 불편함을 갖게 한다.
예를 들어 완경사의 여러 피치 등반이 그것인데, 이런 상황에서는 오히려 간접확보가 유용하다. 그러나 이 간접확보는 제동력이 떨어지는 점은 간과할 수 없기 때문에 제동기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응용해서 사용해야 한다.
선등자 확보와 마찬가지로 로프의 여유는 너무 느슨하지도 또 팽팽하지도

하 강

하강은 내려오는 방법으로 로프를 이용하게 된다. 이때 로프는 암벽에 미리 설치되어있는 하강용 철 지주대 같은 대형 볼트나 고정 확보물에 걸게 된다.
로프를 고정 확보물에 건다는 표현은 로프가 두 가닥으로 걸려야만 하기 때문이며, 그 두 가닥을 이용해서 하강하게 된다. 그래야만 하강을 마친 후, 한 쪽 줄을 잡아 당겨 로프를 회수할 수 있게 된다.
물론 하강은 한 가닥의 로프만으로 할 수 있으나, 로프를 회수하기 위해서 이처럼 두 가닥을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하강기의 종류는 8자형과 튜브형이 있으며, 편리하고 안전하여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한다.
하강하는 방법은 그렇게 어렵지 않으나 중요한 건 양손의 위치이다. 대체로 하강기를 건 로프에 오른손은 하강기 아래에, 왼손은 하강기 위에 두고 하강을 하게 된다.
이런 손의 위치는 하강을 시작할 때 편한 자세를 잡기 위해서이지 본격적인 하강이 시작되면 하강기 위의 손은 제동시키는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다.
본격적인 하강자세에서는 자세의 편안함보다는 제동력을 구사하는 게 더 중요하다. 더욱이 오버행이라면 하강기 위의 손은 제동시키는 역할과는 거리가 멀게 된다. 그래서 하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양손 모두 하강기 아래에 두어 로프를 잡아야 한다.
그리고 로프를 양발 사이 즉 가랑이 사이에 두어 하강을 하면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자유롭게 몸놀림이 되어 편안하고 안정된 자세에서 하강

슬랩등반

암벽등반에서 기본 등반기술이라 할 수 있는 슬랩등반은 우리나라에 많이 산재해 있는 화강암 암벽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다.
암벽의 경사가 약 30∼70도의 반반한 바위사면을 슬랩이라 하는데, 비결은 암벽화의 마찰력과 안정된 자세로 손보다는 발에 많이 의존해서 오르게 된다.

두 팔을 어깨폭 정도로 벌려 곧게 펴고 손바닥을 바위 면에 붙여 몸의 좌우 균형을 잡는다.
경사가 좀더 급해서 암벽화의 마찰력이 떨어진다면 손끝으로 바위 돌기 따위를 잡아 몸을 지탱한다.
발은 바위면을 앞부리로 딛는데 이때 뒤꿈치가 대도록 뒤로 곧게 향하게 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사면에 발을 딛는 관계로 발은 밑으로 미끄러지려고 한다.
신발이 미끄러지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 발이 신발 안에서 밀리거나 돌아가 버린다면, 안정된 자세를 잡을 수 없게 된다.
신발 안에서 발이 밀리는 것을 우선 막아야 하기 때문에 신발 뒤축이 잡아주도록 하는 이런 자세가 필요하게 된다.

이 슬랩등반은 암벽화의 마찰력을 최대한 이용하는 것이 관건인데, 이는 손과 발 그리고 몸의 자세가 서로 조화를 이루며 동적인 안정된 자세에서 비롯된다. 그 자세는 발 앞부리로 사면을 딛고 무릎을 곧게 펴고 선다. 이때 엉덩이는 뒤로 빼는 형태를 취하여 체중이 손보 다는 발쪽에 많이 가해지도록 해야한다. 마찰력이란 압력이 가해질 수 록 많이 얻게 되는 당연한 이치를 알아야 한다.

시선은 양호한 발디딤을 찾기 위해 주로 아래쪽을 주시하고, 간혹 올라갈 방향을 살펴서 진행 방법을 결정한다.
발을 딛는 높이는 무릎정도의 높이가 적당한데, 이는 편안히 걸어서 올라가는 듯 하기 위함이다. 이때 또 하나의 중요한 자세가 올려 디딘 발에 체중을 모두 실어주고 무릎을 곧게 펴는 자세인데, 앞서 말했듯이 체중이동은 마찰력을 많이 얻기 위해서 이며, 무릎을 곧게 펴는 동작은 구부린 자세보다 힘을 적게 소모시키게 되고 그로 인해 편안하고 안정된 다음 동작으로 발 딛는 위치를 정확히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3지점 지지를 원칙으로 하는 자세로 등반한다. 즉 2개의 발과 1개의 손 또는 1개의 발과 2개의 손이 바위면에 지지하고 손이든 발이든 한 개씩 움직여 나간다.
물론 아주 쉬운 슬랩에서는 2지점이나 1지점의 지지도 문제는 없다. 이런 3지점 등반 법은 다음에 설명할 크랙이나 페이스등반에서 가장 안정된 기본 자세가 된다.
할 수 있게

크 랙 등 반

크랙은 바위가 갈라진 틈새인데, 반반한 페이스보다 손과 발을 지지하기가 용이하고, 게다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추락에 대비한 확보물 설치가 손쉬워 암벽등반의 초기부터 최적의 등반 대상 선이 되어 왔다는 것이다.
이처럼 바위가 균열된 틈새를 따라 오르는 등반을 크랙등반이라 하는데, 갈라진 크기나 형태에 따라서 등반기술의 용어가 다르게 표현된다.

손가락 째밍

손가락 째밍은 크랙속에 손가락을 구부려 평창력의 원리로 지지력을 얻는 것과 손가락을 비틀어 지지하는 두 가지 방법이지만, 우선 손가락을 크랙 속 깊숙이 쑤셔 넣으려고 해야 한다. 그런 다음, 손을 비틀거나 혹은 구부려 지지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인지, 장지, 약지를 사용해서 째밍을 하게 되나, 좁은 크랙에서는 약지와 골지(새끼손가락)만을 사용하게 되는데, 이 정도이면 부상을 입게 될 수 있어 조심해야 한다.
이밖에 손가락 굵기보다 조금 넓은 크랙에서 엄지를 함께 사용하는 엄지 붙이기, 엄지 밀어 넣기, 엄지 버티기 같은 엄지손가락 째밍 기술이 있다.

손 째밍

손가락만으로 째밍을 할 수 없는 넓은 크랙에서 구사하는 째밍 기술이다. 크랙속에 손의 바닥을 안쪽으로 구부려 팽창되게 하여 지지하게 되는데, 손가락 째밍처럼 손을 비틀어 지지력을 얻기도 한다.
손을 비틀어 지지력을 얻으려 한다면 엄지손가락 방향이 아래로 향하게 두어야 한다.
이 또한 지지력을 좀 더 얻기 위해서 엄지를 잘 사용해야 하는데, 방법은 엄지를 대도록 손바닥 안으로 밀어 넣으려고 해야한다.
주먹 째밍

손 바닥을 구부려 째밍해도 지지력이 불안정하다면 엄지를 손바닥 안으로 감아 넣고 주먹을 쥐는 주먹 째밍이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러나 손 째밍 만큼 가용범위가 넓지는 못하다.
한 개의 손만으로 째밍을 할 수 없는 더 넓은 크랙에서는 양손을 함께 사용하여 째밍하게 된다.

팔 째밍

팔 째밍은 손만으로 째밍 할 수 없는 넓은 크랙에서 사용되는 기술인데, 팔을 쭉 펴서 크랙속에 집어넣고 팔 관절을 안으로 구부리는 방법과 반대로 팔을 구부려서 크랙속에 집어넣고 팔 관절을 펴서 지지하는 방법이 있다.

발 째밍

발 째밍은 암벽화의 앞 부리에서부터 발등, 또 발 앞 부리와 발 뒤끔치를 사용하게 된다.

라이백

라이백은 반대 방향의 힘 작용으로 지지하는 등반기술로 옆으로 잡는 사이드 클링 라이백과 언더 클링 라이백이 있다.
이 라이백 기술은 누구나 쉽게 구사 할 수 있으나 암벽의 경사가 급해 질수록 많은 힘을 소모시키게 되는데, 이때 발의 사용이 매우 중요하다.
즉 슬랩 등반에서처럼 발의 마찰력을 잘 이용해서 체중을 분산시켜야 한다.



스테밍

양발의 간격을 넓게 벌려 지지하는 자세로, 책을 펼쳐놓은 듯한 형태, 넓은 침니 등에서 긴요하게 쓰이는 자세이다.










침 니

침니는 어깨만 들어가는 좁은 침니에서 양팔과 다리를 크게 벌려야만 지지할 수 있는 넓은 침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페이스 등반

페이스 등반이란 신발의 마찰력만으로 오를 수 없는 정도의 경사에부터 수직이나 오버행에 이르는 벽면에 난 홀드를 손과 발을 적절히 지지하며 등반하는 것을 말한다.
손으로 홀드를 쥐는 그립은 홀드의 모양에 따라 다르고 그에 따른 지지력도 다르게 된다.
손의 지지력을 돕는 일에는 몸의 자세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된다.



클링 그립

다섯 개의 손가락 전부를 사용해서 홀드를 쥐게 된다. 특히 홀드의 크기에 따라 엄지손가락의 위치가 잘 두어야 하는데, 작은 홀드일수록 인지손가락 쪽에 가깝게 혹은 겹쳐 잡아야 한다.

오픈 그립

엄지손가락을 사용할 수 없는 홀드, 즉 매우 작은 버티칼 홀드나 흐르는 홀드에서 중지, 약지, 인지, 골지 순으로 쥐게 된다.

포켓 그립

구멍 홀드에서 중지, 약지, 인지, 골지 순으로 쥐게 된다.

핀치 그립

엄지가 나머지 중지, 약지, 인지, 골지 방향으로 홀드를 꼬집어 쥐게 된다.


엣징과 스미어링

엣징은 홀드를 암벽화의 모서리로 디뎌 지지력을 얻는 발 자세로, 앞쪽 딛기, 안쪽 딛기, 바깥쪽 딛기가 있으며, 주로 수직벽 정도에서 많이 이용하게 된다. 이와 반대로 스미어링은 암벽화의 마찰력을 이용하여 지지력을 얻게 되는데, 슬랩에서 주로 이용된다.


힐 훅

몸이 돌아가지 않게 유지하거나, 오버행 턱을 넘어 설 때 발뒤꿈치를 이용하여 지지력을 얻는다.

풋 핀치

홀드가 극히 적은 오버행진 벽에서 간혹 이용된다.


드 롭 니

스태밍의 일종으로 양발을 버티되 두 발 중, 한 쪽 발은 바깥쪽 딛기로 다리를 비틀어 몸을 안정되게 유지하는 자세이다. 비트는 다리는 홀드를 지지하고 있는 손이 오른손 일 때는 왼발이 되고, 왼손일 때는 오른발이 된다.

카운터 밸런스

몸의 균형을 잡기 위해 다리를 반대편으로, 즉 무게를 이동시키는 자세이다.


런 지

'1' 지점 등반법인 뛰어 잡기인 런지는 가장 어려운 동작이라 할 수 있다. 잡을 홀드의 거리가 멀 때 사용하게

선등의 요령

선등은 등반의 꽃이다. 즉 선등을 해냄으로써 등반의 완성을 이룬 것이라 말 할 수 있다.
최초 선등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등반자의 자신감이다. 이를 갖기 위해서는 우선 올라갈 루트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하며, 그것이 자기의 평소실력보다 약간 낮은 등급이어야 함은 물론 이다.
확보자를 자기보다 등반 실력이 더 우수한 사람으로 두는 것도 한 방편일 것이다.

장비들은 잘 점검하여 가지런하게 정리해둔다. 안전벨트의 장비걸이와 기어랙, 또는 배낭 멜빵끈에 분배해서 걸어놓되 너트나 프렌드는 작은 것부터 한 두 개씩 순서대로 카라비나에 가지런히 끼워놓아야 한다.
특히 확보물은 눈에 잘 뛰는 곳에 두어 필요할 때 손쉽게 빼낼 수 있도록 한다.

등반은 고도의 창의성을 내포한 행위라고 일컬어지는데, 왜냐하면 등반자는 난관에 부딪치면 해결할 능력이 저절로 생겨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신경을 써야 할 것은 여러 가지의 확보물로 중간확보를 하며 등반해 나가는 일이다.
중간 확보물의 간격이 멀면 추락거리가 길어지고, 반대로 가까우면 힘과 시간이 많이 소모될 뿐 아니라 확보물이 부족해 등반을 어렵게 만든다. 그래서 선등자가 갖추어야 할 등반능력 중에 하나가 이 중간확보의 설치 요령이다. 간격은 루트의 위험성과 난이도에 따라 다르나 어려운 곳에서는 2-3미터의 거리가 보편적이다.
그러나 이 확보물의 수에 맞물려 중요한 점은, 불규칙하게 설치된 확보물은 로프의 꺽임이 생기게 마련이고, 이로 인해 로프에 마찰이 커지게 되어 전체적인로프의 흐름이 원활하지 못하게 된다. 마치 아래에서 줄을 당기는 것처럼 느껴지며, 동작은 자연히 둔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현상이외에 더 큰 문제는 추락시 설치된 확보물들에 충격이 각기 전달되어 방향이 바뀌면서 빠질 수가 있다. 이를 방지하려면 긴 슬링 등을 사용하여 자일의 꺽임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 자일이 크게 꺽이는 지점에서 마디(피치)를 끊는 것도 방법이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선등자가 나아갈 길을 잘 내다보고 지나온 길을 수시로 돌아봐야 한다.
생각하는 등반을 해야 하는 것이다.
자일 유통은 중간 확보물에 의해서만 억제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의 영향은 오히려 미미하다. 반면에 자일이 크랙에 끼거나 엉키면 꼼짝없이 내려와야 한다.
다운 클라이밍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잖아도 아찔한 절벽에서 이런 헛수고를 하지 않으려면 앞은 물론 뒤도 항상 잘 살펴야 한다. 생각은 확보물에 카라비나 하나를 걸때에도 필요하다.
너트, 프렌드, 하켄 등 확보물은 빠르고 정확하게 설치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낮은 대에서 미리 연습해 보는 것이 좋다.



기존 확보물을 이용할 때는 그것의 상태와 거기 달린 슬링의 안전성을 반드시 확인해 본 뒤에 카라비나를 걸어야 한다. 확보물이 불안하면 제2, 제3의 확보물을 설치해야 하고 슬링 이 낡았으면 자기 것으로 교체해야 한다.
선등자와 후등자는 운명공동체다. 선등자가 아무리 잘 오르더라도 후등자는 위험에 처할 수 있다. 후등자가 어려운 곳에서 쩔쩔매거나 탈진하면 전체가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자기확보가 끝나면 후등자 확보에 들어간다. 이 때 마디(피치) 길이가 자일 길이보다 짧아 후등자의 발밑에 줄이 많이 남아있으면 끌어 올린후 후등자의 로프가 팽팽해 졌을때에 확보기에 로프를 건후 확보를 시작한다.

후등자가 다 올랐으면 선등자는 그가 회수해온 장비를 건네 받아 출발전과 마찬가지로 가지런히 정리한다.
자일을 사려놓는 것도 중요한 일인데, 후등자 확보시 자일을 확보줄에 정리하면서 했다면 두 번 일을 하지 않게 된다.
후등자의 자기확보와 선등자 확보 준비가 끝났으면 다시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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